한국형 판타지의 한 획을 그은 영화 ‘신과함께’는 관객뿐만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극중 하정우는 저승차사 강림 역을 맡아 순간이동을 비롯해 가상의 인물과 전투를 벌이는 등 그린 스크린 속에서 홀로 사투를 벌였다.
하정우는 “싸우는 대상은 모두 허공이다. 가장 창피한 건 순간이동 할 때였다. 영화에서는 슥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선 내가 그냥 움직이는 거다. 허공에서 덕춘(김향기 분)을 불러서 얘기하는 것도 혼자 소꿉놀이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강림 캐릭터가 단선적이면서 묵직한 톤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 민망했다. 그걸 스태프 100~150명이 지켜보고 있다.(웃음) 민망함을 해결하기 위해 감독님이 마이크로 효과음을 줬다. ‘하늘이 열린다’ ‘바닥이 흔들린다’ ‘쿠쿵’ 이렇게 소리질러준다”며 김용화 감독을 흉내 내기까지 해 인터뷰 현장을 폭소케 만들었다.
일반적인 연기를 할 때보다 더 힘든 현장이었지만 하정우는 “적응을 하게 되더라. 배우들이 앞으로 이런 CG 작업에 익숙해져야 할 수도 있다. 이제는 판타지물이 아니라 사실적인 영화도 CG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이번에 촬영 끝낸 ‘PMC’도 CG 분량이 많았다”라며 벌써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신과함께’는 환생과 용서 등 심오한 메시지를 다루고 있다. 죽어서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후회와 감동을 선사한다. 하정우는 어떤 감정으로 영화를 바라봤을까. 그는 “죽으면 이런 비주얼과 재판을 보는 건가 생각해 봤다. 나는 기독교라서 성경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은 해볼 수 있으니까”라며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용서’라는 개념을 꼽았다. 염라대왕이 ‘이승에서 용서받은 건 저승에서 다시 심판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부분에 감명 받았다는 것.
하정우는 “일리 있는 대사이지 않냐. 나도 내 자존심 때문에 안 좋게 지내는 사람은 없나 인생을 되짚어 봤는데 2명 정도 있더라”라며 한동안 거리를 두고 지냈던 지인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술 먹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30분 만에 오더라. 그 친구도 살면서 늘 한구석에 날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 순간 감정이 눈 녹듯이 다 녹았다. 솔직하게 하나씩 털어놓으니까 생각보다 쉽게 풀리더라. 모든 일은 인간관계 속에서 부대끼면서 벌어진다. 용서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쉽게 마음을 가지면 편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통해 인간관계까지 회복했다는 말에 하정우는 “영화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영화를 그냥 볼 수도 있고, 뭔가를 생각할 수도 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모두 다 똑같다. 행간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면 가져가는 게 다르다”라고 덧붙였다.
영화에는 살인지옥부터 나태지옥, 거짓지옥, 불의지옥, 배신지옥, 폭력지옥, 천륜지옥 등 7가지의 지옥이 등장한다. 망자인 자홍(차태현 분)은 ‘귀인’인 덕분에 재판을 받지도 않고 통과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통과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재판을 받는 이가 하정우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진행 됐을까.
그는 통과할 수 있는 지옥으로 조심스럽게 나태지옥을 꼽았다. 그는 “나태지옥 빼고는 걸리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극중 살인은 말 한마디 잘못한 걸로도 가능하다고 하니까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태지옥은 내 삶 자체가 요란하다 보니까 통과할 수 있을 거 같다. 천륜지옥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께 잘 한다고 생각하는데 부모님은 늘 섭섭해 한다. 희한하다. 다들 그렇지 않나. ‘넌 속을 모르겠어’라고 하신다. 어머니, 저도 제 속을 모릅니다.(웃음) 남동생이 잘 하는 편이고 나는 뒤에서 묵묵히 서포트 하는 느낌이다. 나는 마음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부모님 속내를 천륜지옥에서 본다면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이것도 통과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다 걸린다. 인간의 법망은 피할 수 있어도 하늘의 법망은 피할 수 없나보다”라고 말했다.
연기자로서도 바쁘지만, 많은 재주를 지닌 그는 감독 및 제작자, 화가로써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작품 활동이 끝나면 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의 차기작 중 하나로 알려졌던 ‘앙드레김’ 등이 무산되기도 했지만, 내년에도 그는 열심히 달릴 예정이다. 우선 촬영을 마치고 대략적으로 개봉날을 잡은 것은 오는 여름 개봉할 ‘신과함께2’와 추석쯤 개봉할 ‘PMC’다.
하정우는 “그림은 최근 몇 달 동안 못 그렸다. ‘PMC’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영어 대사가 80%인데다가 ‘더 테러 라이브’처럼 혼자 극을 끌고 가다 보니까 말이 너무 많다. 숙지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걸렸다”며 “그래도 촬영 끝나고 12월 초에 10일 동안 여행을 가긴 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한 날 저녁에 ‘배우 왓수다’를 찍었다. 다음날은 평소 하는 성경 모임이 앞당겨져서 했다. 이번에 내가 간식 담당이라 김밥 사서 경건하게 거실 치우고 모임을 갖다가 저녁엔 ‘PMC’ 쫑파티가 있어서 갔다. 그리고 다음날엔 외신인터뷰와 VIP 시사회도 했다. 연말, 연초에는 무대인사만 한다. 그래도 3일 정도 쉴 시간이 있는데 이정재 이사님이 회의하자고 하더라”라고 스케줄을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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