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쇼트트랙 500m 결승서 충돌
금메달 유력 박승희 동메달에 댓글
한국 전훈으로 트라우마 극복
4년 전인 2014년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은 쇼트트랙 ‘단거리 강자’ 엘리스 크리스티(28ㆍ영국)와 한국 국민 모두에게 잊지 못할 경기가 됐다. 크리스티가 무리하게 선두권을 추월하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출전 선수 4명 중 3명이 무더기로 넘어진 것이다. 함께 넘어진 박승희(26)는 다시 일어나 달리려다 중심을 잃고 또 넘어졌고, 결국 4명 가운데 최하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국민의 분노는 대단했다. 충돌만 없었다면 출발부터 선두로 치고 나왔던 박승희의 금메달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의 실격으로 박승희가 동메달을 땄지만 분노 해소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승희는 ‘한국 취약 종목’인 500m에서 한국여자선수로는 나가노올림픽(1998년) 전이경(동메달) 이후 16년 만에 메달에 도전 중이었다. 급기야 박승희는 넘어진 충격으로 무릎을 다쳐 1,500m 출전도 포기했다.
분노는 온라인 공격으로 이어졌다. 수천 건의 협박 글귀가 크리스티의 SNS 계정에 난무했다. 크리스티가 SNS를 통해 박승희에게 사과했지만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크리스티는 2일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당시 한국인들의 댓글이 너무 무서워 잠을 잘 수 없었다”면서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이후 크리스티는 1,000m, 1,500m에서도 모두 실격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각종 경기에서 소극적인 레이스로 일관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티는 한국 전지 훈련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한다. ‘한국 공포’에 시달리던 크리스티를 보다 못한 코치가 정면 돌파를 위해 ‘이열치열’ 한국행을 추천했고, 소치올림픽이 지난 뒤 몇 달 후 방한한 크리스티는 한국코치와 함께 혹독한 훈련을 했다고 한다. 크리스티는 “한국에서 모두가 내게 친절하게 대해줘 (트라우마 극복에) 도움이 됐다”라며 “선수들이 모두 나와의 훈련을 원했는데 이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티가 2018 평창올림픽에 출전, 이미지 쇄신을 노린다. 크리스티는 평창올림픽 모의고사 격인 지난해 11월 쇼트트랙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 종목 싹쓸이 금메달을 목표로 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에게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크리스티는 “홈경기를 치르는 한국선수들이 거침없이 나올 테지만 이를 극복할 것”이라며 “소치 올림픽 이후 정말 비참한 상태에 빠졌지만, 다시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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