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 눈에 비친 ‘성난 한국’
목소리 높이고 권위로 찍어눌러
“툭하면 욕설 들어 당황스러워”
“출퇴근 만원 지하철 타기 싫어”
한국에서 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태국인 찌라완 분습(29)씨는 지난달 서울 마포구의 한 시장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중년 남녀를 목격했다. 싸움을 하던 남성은 바닥에 침을 뱉고 금방이라도 상대방의 몸에 손찌검을 할 것 같은 행동을 취했지만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구경만 할 뿐이었다. 분습씨는 “왜 그렇게까지 심하게 표현해야 하는 건지, 상대방이 받는 상처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창피하지는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모습은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내고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수그러드는 ‘다혈질’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진다고 생각하는 듯 목소리를 높이고 나이나 사회적 지위에서 발생하는 권위에 기대 상대방을 누르기도 한다.
특히 출ㆍ퇴근 시간대 만원 지하철은 외국인들이 피하고 싶은 모습이다.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먼저 타겠다며 다른 사람을 밀치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 안에서는 가방이나 팔꿈치에 부딪힌 사람들끼리 서로 언성을 높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일본인 유학생 아소 유키(31)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다른 사람을 밀치면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에게 항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상대방이 더 큰 소리로 화를 내더라”며 “몇 년 살다 보니 이제는 지하철에서 화 나는 일이 있더라도 ‘어차피 안 볼 사람인데 싸워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 참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 생활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동료들의 화는 외국인들을 당황하게 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로 갑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직장 상사를 보면 ‘내가 외국인이라서’, ‘내가 하급자라서’ 분풀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법무부의 2017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의 5.2%가 직장에서 욕설을 들었고 4.4%는 직장 내 한국인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4년간 직장 생활을 한 뒤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쉬나르 마제노바(32)씨는 “다니던 회사 대표가 가끔 직원들을 불러놓고 화를 냈는데 알고 보니 거래처에서 불만이 접수된 뒤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며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욕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한 번 화를 내고 나면 나중에 자신의 잘못이 밝혀지더라도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소리를 더 높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이나 권위에 기대 일부러 더 화를 내고 젊은이, 하급자들은 여기에 위축돼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분습씨는 “싸울 때 일단 목소리를 크게 내면 자신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마제노바씨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주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사람들은 잘못이 드러나면 그 때만 건성으로 사과를 할 뿐이지 근본적으로 태도가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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