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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존 버거 (1월 2일)

입력
2018.01.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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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 인간'의 존 버거가 떠난 지 꼭 1년이 됐다. commons.wikimedia.org
'제7의 인간'의 존 버거가 떠난 지 꼭 1년이 됐다. commons.wikimedia.org

19세기 이래 유럽의 산업화는 농촌 인구를 도시로 몰아갔다. 하지만 인구유입 속도는 산업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한계 역시 자명했다. 유럽의 노동력은, 불황 등 단기적인 굴곡은 있었지만, 70년대 중반의 오일쇼크 이전까지 만성적인 공급 부족 사태를 겪었다. 양차대전, 특히 2차 대전 이후의 고도성장기 인력난은 극심했다. 그 공백을 메운 게 저개발국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슬럼도 커졌고, 빈곤에서 기인하는 많은 문제들이 양산됐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쉬(Max Frisch, 1911~)의 담담한 진술처럼, 1세계가 불러들인 것은 노동력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프랑스에 살던 영국작가 존 버거는, 아틸라 요제프(Attila Jozef)의 시 제목에서 따온 이름 ‘제7의 인간’(차미례 옮김, 눈빛)으로 그들을 명명했다. 떠돌며 거처와 생계를 이어야 하는, 지금 존재하지만 동시에 늘 부재하는 사람들. 버거의 글 사이사이 친구 장 모르는 사진을 찍었다. “모든 사진들은 수송의 한 형태이며, 부재(不在)의 한 표현이다.” 모르의 사진 속 한 이주노동자는 품 속에서 그리워하는 이의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그 사진은 부재를 드러낸다.(…) 그것은 여전히 열려진 채, 빈 공간을 안에 담고 있다. 그 공간은, 희망사항이지만 언젠가는 그 모델의 실물이 다시 채워 줄 빈 자리이다.”

버거와 모르는 글과 사진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거친 삶과 전후 자본주의의 구조적 탐욕, 세계의 불평등, 저개발 착취의 고리로서의 이주노동의 의미를 파헤친다. “우리가 제국주의는 그 불공평한 공동개발의 전천후적인 법률을 가능한 한 가장 널리 적용하려 든다는 사실을 이해할 경우에만, 오직 그럴 경우에만, 우리는 20세기의 세계사를 이해할 수가 있다.”

버거가 저 책을 쓴 것은 1973년부터 74년 전반기였다. 74년 오일쇼크와 2차대전 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으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1세계는 강력한 이민 억제ㆍ규제 노선으로 선회했다. ‘제7의 인간’의 꿈/악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주에 ‘성공’했든 못 했든 책의 주제인 부자유(不自由)의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했다. 그 추이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기록했던 존 버거가 2017년 1월 2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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