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서 귀화한 ‘철벽 수문장’
최근 경기 세이브 성공률 92%
“평창 A조 속한 국가들 강하지만
우리 경기력에 놀라지 않을까요”

아이스하키에서 골리(골키퍼)는 야구의 에이스급 선발 투수에 비유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단기전에서 골리의 팀 내 비중은 60~70%에 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라트비아는 골리 크리스터스 구들렙스키스의 신들린 방어로 8강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와 접전을 펼쳤고 1-2로 석패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랭킹 21위 한국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이변을 일으키려면 골리의 활약은 필수다. 대표팀 수문장은 푸른 눈의 귀화 선수다. 캐나다 출신 맷 달튼(32)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보스턴 브루인스를 거쳐 세계 2위 리그인 러시아대륙간리그(KHL)에서 3년을 뛰다가 2014년 7월 국내 실업팀 안양 한라에 입단했다.
특별 귀화는 2016년 4월 이뤄져 태극마크를 달았다. 달튼이 선진 리그를 제쳐두고 한국행을 택한 것은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소치 대회 당시 올림픽 열기를 직접 현지에서 느낀 달튼은 “올림픽에 나간다는 것은 내 인생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달튼의 경쟁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지난해 4월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리그) 대회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사상 첫 톱디비전(1부리그) 진출도 견인했다. 12월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 대회에서도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슈팅을 철벽처럼 막아냈다.
그 동안 한국 아이스하키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1위 캐나다, 3위 스위스, 4위 핀란드를 만나 두 자릿수 점수차 패배를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도 많았지만 달튼의 방어 덕분에 대표팀은 예상 밖 선전을 했다. 달튼은 세 경기 동안 총 155개의 유효 슈팅 가운데 143개를 막아 92.3%라는 경이적인 세이브 성공률을 기록했다. NHL 정상급 골리의 세이브 성공률은 92~93%다. 20분씩 총 3피리어드로 진행되는 아이스하키에서 거의 1분마다 1개꼴로 상대 슈팅이 쏟아진 셈인데, 육탄방어를 펼치던 달튼은 핀란드전 도중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지난 연말 인도네시아 발리로 휴가를 떠나기 전에 안양빙상장에서 만난 달튼은 “이가 부러진 것은 8년 전 이후 두 번째”라며 “상대가 때린 퍽의 충격으로 헬멧이 움직이면서 이가 부러졌다”고 밝혔다. 치과 치료를 마친 그는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 “상대 슈팅 수가 30~40개 넘어간 순간부터는 그냥 ‘또 슈팅이 날아오는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졌다”고 웃었다.

평창 올림픽 A조에서 캐나다, 체코(6위), 스위스(7위)와 한 조에 속한 대표팀은 캐나다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다. 경기 전 워낙 강한 상대라 선수들 모두 긴장했지만 2피리어드까지 2-1로 리드를 하는 등 캐나다의 허를 찔렀다. 비록 2-4로 분패했어도 평창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모국 선수들을 적으로 만난 달튼은 “캐나다 대표팀에 예전부터 알고 있던 선수도 있어 경기 후 사적인 대화를 나눴는데 ‘아무 기대 없이 한국을 상대했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경기력이 많이 올라와서 놀랐다’고 했다”면서 “올림픽에서 다시 우리를 만난다면 또 놀라지 않을까”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평창의 해를 맞은 달튼은 “그토록 기다렸던 올림픽이 다가왔고, 가족들도 올림픽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것이라 정말 기대되는 한 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내가 해왔던 역할을 올림픽에서 똑같이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림픽에서 결과도 중요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대표팀의 경기를 보고 아이스하키를 더 많이 즐기고,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스포츠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안양=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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