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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전 7패... 그래도 그녀에겐 강심장이 있다

입력
2018.01.01 16: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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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라, 허리 낮추고 등 세운

‘성난 고양이’ 자세로 독주체제

월드컵 등 24개 대회 연속 1위

이상화, 기록 상승세라 고무적

“평창 500m 레이스는 단판승부

2연패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3연패 위업에 도전하는 이상화. 지난 해 1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 솔트레이크시티=AP 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3연패 위업에 도전하는 이상화. 지난 해 1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 레이스를 펼치는 모습. 솔트레이크시티=AP 연합뉴스

2010년 2월17일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벌어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의 전광판. 여자 500m 레이스를 마친 이상화(29) 이름 옆에 ‘1’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 당시 대표팀을 지도했던 김관규 용인대 교수는 시상식 후 “이상화는 세계기록과 올림픽 2연패도 가능한 선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전망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상화는 2013년 11월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신기록(36초36)을 세웠다. 이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해 2연패를 달성하며 ‘빙속여제’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3연패에 도전한다. 동계올림픽에서 단일 종목을 3연속 휩쓴 선수는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ㆍ1992ㆍ1994ㆍ여자 500m), 독일의 클라우디아 페흐슈타인(1994ㆍ1998ㆍ2002ㆍ여자 5,000m) 둘 뿐이다. 하계올림픽으로 범위를 넓혀도 한국 선수 중에서는 남자 사격 50m 공기권총의 진종오(2008ㆍ12ㆍ16)가 유일하다.

이상화의 라이벌로 꼽히는 고다이라 나오. 고다이라가 지난 해 1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0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역주하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AP 연합뉴스.
이상화의 라이벌로 꼽히는 고다이라 나오. 고다이라가 지난 해 1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0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역주하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AP 연합뉴스.

냉정히 말해 최근 기록만 보면 이상화의 3연패 전망은 썩 밝지 않다. 소치올림픽 직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종아리 통증에 시달리던 그는 최근 1년 사이 국제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 사이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32)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고다이라는 밴쿠버 올림픽 12위, 소치 대회 5위 등 이상화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치올림픽 직후 자비를 들여 네덜란드 유학길에 올라 그곳에서 네덜란드의 마리안느 팀머(40) 코치를 만나면서 일취월장했다. 현역 시절 1998 나가노 올림픽 2관왕(1,000mㆍ1,500m), 2006 토리노 올림픽 1,000m 금메달리스트였던 팀머 코치는 고다이라에게 “머리와 허리를 낮추고 등을 높게 세우라”고 조언했다. ‘성난 고양이’라 불리는 그의 자세는 이 때 완성됐다.

지난 해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나란히 금(고다이라 나오, 왼쪽), 은(이상화)을 나눠가진 뒤 서로 격려하는 모습. 오비히로=연합뉴스
지난 해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나란히 금(고다이라 나오, 왼쪽), 은(이상화)을 나눠가진 뒤 서로 격려하는 모습. 오비히로=연합뉴스

이후 고다이라는 무서운 기세로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그는 2016~17시즌 월드컵 시리즈 500m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했다. 지난 해 평창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강릉 세계선수권과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도 이상화를 제치고 정상에 섰다. 올 시즌에도 7차례의 월드컵 1~4차 대회를 석권했다. 일본 국내 대회까지 포함해 24개 대회 연속 1위다. 최근 7번 맞대결에서 이상화는 고다이라를 한 번도 못 이겼다. 고다이라는 지난 해 1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 4차 대회 1,000m에서 세계신기록(1분12초09)까지 달성했다.

고다이라 독주의 또 다른 비결은 강인한 체력이다. 윤의중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이사는 “일본대표팀 선수들에게 들어보니 고다이라 훈련량이 남자 선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고다이라가 500m와 1,000m에 이어 단거리 선수로는 드물게 1,500m까지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고다이라는 평창올림픽에서도 3종목 모두 출전한다.

그러나 정작 이상화는 고다이라의 존재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고다이라를 라이벌로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이상화는 늘 고개를 저으며 “라이벌은 나 자신 뿐”이라고 강조한다. ‘빙속여제’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이상화 기록이 점차 상승세인 것도 고무적이다. 그는 지난 해 12월 월드컵 4차 대회에서 36초71의 올 시즌 자신의 최고 기록을 냈다. 1초 가까이 났던 고다이라와 격차도 0.2초까지 줄였다. 또한 이상화는 ‘강심장’이다. 김관규 교수는 “올림픽은 월드컵과는 차원이 다르다. 밴쿠버 때도 기록상 이상화가 1등은 아니었지만 해냈다. 올림픽 2연패를 한 선수다. 올림픽에서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빙속 사상 첫 금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상화. 밴쿠버=연합뉴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빙속 사상 첫 금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상화. 밴쿠버=연합뉴스

바뀐 경기 방식도 변수다. 지난 올림픽까지 500m는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한 차례씩 달려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결정했다. 그러나 평창에서는 단 한 번만 레이스를 펼친다. 인코스, 아웃코스는 경기 하루 전 추첨으로 결정한다. 김 교수는 “상화가 아웃코스를 선호하지만 그보다 단판 승부로 메달 색깔이 가려진다는 게 더 중요하다.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이 클 텐데 큰 경기 경험이 많은 이상화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평창올림픽 여자 500m는 2월 18일 오후 8시 벌어진다. 이상화가 한국 여자 빙속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던 8년 전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보다 딱 하루 늦은 날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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