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중 하나로 꼽히는 이만수(60) 전 SK 감독은 요즘은 ‘야구 전도사’로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1호의 주인공이자 당대 최고 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선수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불도저 같은 도전 정신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전 감독은 1997년 11월 은퇴한 뒤 지도자 연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1999년부터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었는데, 공식 직함은 코치가 아닌 불펜 포수였다. 그러나 특유의 친화력과 책임감을 앞세워 코칭스태프의 일원으로 인정받았고, 2005년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다.
그는 “올해가 무술년 개의 해인데 꼭 12년 전인 2006년 병술년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당시 국내 프로야구 SK에 수석코치로 합류해 미국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력을 발휘한 이 전 감독은 2007년 5월 KIA와 홈경기에서 문학야구장이 매진세례를 이루자 ‘팬티 퍼포먼스’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프로야구에 새 바람을 몰고 온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의 개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014년 10월 현역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에는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 야구를 전파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이만수 전 감독은 “프로야구 현장을 떠나면 아내와 함께 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못 챙긴 것 같아 많이 미안하면서도 응원해주는 아내가 고맙다”고 2017년을 돌아봤다. 새해 소망 중 하나로 두 차례나 좌절을 맛 본 라오스 야구장 건립을 꼽았다.
그가 라오스 야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SK 감독 재직 시절인 2013년 11월이었다. 라오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용품 지원을 시작했다. 이 전 감독은 “우리나라에도 1904년 미국인 필립 질레트 선교사 덕분에 야구가 도입된 것처럼 나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2014년 말 처음 라오스로 건너가 미니야구팀을 만들어 본격적인 씨앗을 뿌렸다. 당시만 해도 팀 선수가 20명 정도 밖에 안 됐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야구부를 3팀 창단하는 등 선수가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 전 감독은 야구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라오스 총리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라오스야구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두 번이나 벽에 부딪힌 라오스 야구장 건립을 새해에는 꼭 이루고 싶다”고 또 한 번 힘줘 말했다. 이미 라오스에서는 라오스 국립경기장 스포츠 종합시설 단지 내 부지를 무상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이 전 감독이 건립비용을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절대 포기는 없다’(Never Ever Give Up)는 자신의 신념을 강조한 그는 “힘들지만 2018년에도 다시 도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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