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에 ‘나를 찾아온 야래향’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지난달, 나와 야래향의 인연은 일본에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 중국과 일본의 문화사업의 새로운 방향을 발표하는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았다. 그 무대에서 또 야래향을 불렀다. 야래향은 1930년대 이향란 선생님이 불러서 중국과 일본에서 사랑을 받았고, 1980년대 등려군의 리메이크로 또 한 번 일본인의 마음을 훔쳤다. 나에겐 운명처럼 찾아온 곡인데, 그 곡을 중국에 이어 일본에 가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다.
1절은 일본어, 2절은 중국어로 불렀다. 콘퍼런스에 참가한 사람들 말이, 야래향을 일본어로 시작해서 놀랍고 좋았는데 그걸 부른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했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야래향의 인연은 대만에서도 계속 되었다. 지난달에 학생들과 함께 ‘빈 병 사세요’라는 제목의 중국 창작 뮤지컬을 들고 대만 대학생 뮤지컬 대회에 참가했다. 이 작품은 대만의 유명 드라마를 소재로 만든 뮤지컬이라 중국어를 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작품이다.
학생들은 4박5일 일정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성공적인 공연에 이어 세 주인공이 모두 최고상을 수상하며 기쁨은 배가 되었다. 대회 기간 중 대만의 모 장군이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분은 가수 등려군의 친오빠였다.
나는 다시 한번 야래향이 나를 이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려군의 오빠는 지금도 젊은 나이에 아쉽게 떠난 동생의 이야기로 드라마와 뮤지컬, 그리고 음반을 제작하면서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야래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하이에서의 공연 이야기도 했다. 장군이 나의 야래향을 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는 “한국인이 부른 야래향에 깊은 감동 받았다”며 기뻐했다.
노래를 부른 뒤 그녀의 생전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대단한 연습벌레였다고 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연습을 멈추는 일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날 저녁 만찬에서 귀한 앨범 한 장을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등려군이 혼자 연습하면서 녹음한 음원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체크해보려고 반주도 없이 녹음한 것이었다. 그 음원에 대만 유명 작곡가가 반주를 만들어 넣어 새로운 음반으로 탄생했다. 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음악을 그리워하던 팬들에게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만찬을 즐기던 분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등려군은 살아서 활동할 때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작고한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위로를 얻고 있었다.
등려군의 오빠는 지금도 그녀의 드라마와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지금도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곳에서 기념 공연 제의가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익을 목적으로 해서 팬들에게 부담을 주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야래향이 만들어준 인연으로 많을 걸 배우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일본과 중국에서 활동하면서 운명처럼 ‘나의 노래’를 만나고, 그 노래가 다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과 교유하게 된 데는 아직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큰 뜻이 있다고 믿는다. 그 결론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예술가이길 소망한다.
홍본영 뮤지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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