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해에는 주요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연금 전체 자산 중 국내주식 비중이 이미 자산운용 기준치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기존 대형 우량주 중심의 코스피 주식을 판 뒤 코스닥 주식을 사야 한다는 이야긴데, 국민노후자금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어 논란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근 ‘2018 경제정책방향’에서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 활성화 및 개선 방안을 내 놨다. 정부는 지난 11월 초에도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에서 비슷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 기대감에 힘입어 코스닥지수는 12월 3.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제이노믹스(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철학)의 한 축인 ‘혁신성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사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는 그 동안 코스피에 편중돼 있었다. 지난 22일 기준 국민연금의 코스닥 투자는 2조6,000억원 안팎에 그쳤다. 국민연금 전체 운용 자산(617조1,000억원)의 0.4%,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국내주식(130조원)의 2%에 불과하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금ㆍ펀드실장은 “국민연금 입장에선 유동성이 풍부한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해야 수익의 안정성을 높이고 시장 충격도 줄일 수 있어 코스피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방침에도 국민연금이 코스닥 투자를 확대하기까진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이미 한도를 넘었다. 국민연금의 2017년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9.2%다. 지난 5월 의결된 중기(2018~2022년) 자산배분안에 따르면 2018년 말 국내주식 목표비중도 18.7%다. 그러나 코스피 활황으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이미 21.1%를 기록, 목표를 초과한 상태다. 코스닥 투자를 늘리기 위해선 먼저 갖고 있는 코스피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국내주식 비중의 오차허용 범위(±5%포인트)를 두고 있긴 하지만 이는 갑작스런 시장 변동 등을 감안한 예외 조항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이 중장기적으로 해외투자를 늘려가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국내주식을 더 확보할 여력도 크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코스닥 투자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원칙에 반하지 않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운용독립성 등 5가지 기금운용 원칙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같은 코스피 우량주 비중을 줄이고 코스닥 투자를 확대하는 게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우세하다.
정부는 일단 기금의 수익률 평가 기준(벤치마크 지수)을 코스피 지수에서 코스피와 코스닥이 혼합된 지수로 바꾸도록 권고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연기금 위탁운용 유형에 ‘코스닥 투자형’도 신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강면욱 전 본부장이 지난 7월 중도 사퇴한 뒤 5개월째 공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금 운용 방향을 변경하는 것은 정부의 압력으로 비춰질 수 있고 운용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벤처육성 방향에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한 국민노후자금을 여기에 이용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도 “정부가 계속해서 국민연금의 운영이나 투자에 관여하는 건 운용의 독립성 원칙에 현저히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권재희 기자 luden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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