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마지막 날 광주서 화재
4세ㆍ2세ㆍ15개월 아이들 숨져
잠든 아이들 두고 아빠 나간 사이
새벽에 만취해 귀가한 20대 엄마
“라면 끓이려다” “담뱃불 때문에”
진술 오락가락… 홀로 대피도 수상
경찰, 과실치사 혐의로 긴급체포
2017년 마지막 날 새벽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다섯 살도 안 된 어린 3남매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 당시 갓 스물을 넘긴 엄마 정모(21)씨는 술에 취해 있었고, 아버지는 PC방에서 게임에 빠져 있었다. 경찰은 정씨가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진술함에 따라 중실화 및 과실치사 혐의로 정씨를 긴급체포했다.
31일 오전 2시26분쯤 광주 북구 두암동 L아파트 11층 정씨의 집 작은방. 거실 쪽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에 잠을 깬 정씨는 화들짝 놀랐다. 검은 연기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방 쪽으로 번지고 있던 터였다. 당시 술에 취해 있던 정씨는 베란다로 몸을 피한 뒤 전 남편인 이모(22)씨의 친구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리고 119에도 신고했다. 불은 작은방을 모두 태우고 부엌과 거실 일부를 그을린 뒤 25분여 만에 꺼졌다. 정씨는 손과 발에 2도 화상을 입었다. 하지만 작은방에 있던 정씨의 큰아들(4)과 둘째 아들(2), 15개월 된 막내딸은 숨진 채 발견됐다. 정씨가 불이 났는데도 잠든 아이들에게 이불만 덮어주고 자신만 베란다로 빠져 나온 것이다.
나흘 전 이씨와 이혼한 정씨는 30일 오후 7시40분쯤 이씨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외출했다가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만취해 31일 오전 1시53분쯤 귀가했다. 이혼 후에도 같이 살던 이씨도 정씨가 외출하자 두 시간 여 뒤 아이들을 재우고 PC방으로 가 화재 당시에도 온라인 게임에 빠져 있었다.
사고 직후 정씨는 화재 원인을 두고 “라면을 끓이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아이들이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깜박 잠이 들었다”고 했다가 “담뱃불 때문인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정씨는 경찰에서 “귀가하면 라면을 끓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러지 않은 것 같다”며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날씨가 추워 거실로 들어와 담배를 피웠는데, 막내딸이 잠에서 깨면서 울길래 방으로 들어가 딸을 안고 잠들었다. (이불에 비빈)담뱃불이 꺼졌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씨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고 2011년부터 동거해왔으며, 2015년 혼인 신고했다. 그러나 정씨가 최근 실직한 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이씨와 생활고 문제 등으로 다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이날 화재 발생을 전후로 이씨에게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3차례 보내고, 음성통화를 9차례 시도하기도 했다. 정씨 부부는 올해 1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부양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로 선정되지 않았으며,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 간 긴급생활자금(매달 130여만원)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일단 화재 현장 감식 결과 작은방에서 인화성 물질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정씨가 거실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진술한 점 등으로 미뤄 실화에 무게를 두고 정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하지만 화재 당시 정씨가 자녀들을 내버려두고 혼자서 대피하고, 화재원인을 두고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석연찮은 부분도 있어 방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숨진 아이 3명에 대한 부검을 진행해 사인을 가릴 방침이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