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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내일을 쓴다

입력
2017.12.31 11:5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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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평생의 숙원은 세상에 책 한 권을 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의과대학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응급실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었다. 한 번도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으며, 책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주변엔 책을 따로 사서 읽는 사람조차 없었다. 창작이란 가끔 일기를 일기장에 적는 정도였고, 그 외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해놓은 것이 없었다.

그러던 정확히 5년 전의 1월 1일이었다. 아직 레지던트였던 나는 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막연하지만 새해부터는 내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 서평을 적었고, 음악을 들으면 음악평을 적었고, 영화를 보면 영화평을 적었고, 시가 생각나면 시를 썼고, 편지가 쓰고 싶으면 편지를 썼으며, 어떤 일을 겪었으면 그 일에 대해서 썼다. 모든 것을 적은 이유는 내가 무엇을 적을 수 있을지 나도 구체적으로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연히 오늘 내가 그것에 대해 적으면, 내일은 그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반 블로그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았고, 모든 것을 활자로 적는다는 것은 고됐다. 안 쓰고 빼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든 쓰면 그것이 남아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과, 그를 거듭하면 심지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지난 글을 보고 다른 감정을 느낀 만큼 내가 변한 것임을, 같은 일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만큼 내가 발전한 것임을 깨달았다. 결국 5년간 블로그에는 1200개가 훌쩍 넘는 글이 쌓였다. 사흘이면 하루를 거르고 이틀을 쓴 셈이다. 그 사이에 나는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는 칼럼니스트도 되었고, 책을 두 권 냈다. 이제 누군가는 나를 작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작가란 누군가가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임을 그때 알았다.

새해에는 세 번째 책으로 독서일기를 출간했다. 작년 상반기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은 기록이다. 도합 182편이 된다. 이 책을 냈다니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병원 근무를 하고 책을 한 권 쓰고 칼럼을 연재하며, 따로 182편의 글을 더 썼기 때문이다. 솔직히 힘이 들었다. 하지만 해오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5년간 하루 한 권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뽑아 내 생각을 덧붙이는 작업을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어진 작업은 본업을 유지하면서 청탁이 들어올 때마다 글을 쓰는 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돌이키면 다양한 분야의 발상을 활자로 만드는 스스로의 훈련이었다.

그것은 한 새해의 결심에서 시작했다. 서른 살의 내가 서른다섯 살의 내게 보내는 큰 선물이었던 셈이다. 이제 내게 쓰지 않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무슨 발상이 떠오르든 이것을 어떻게 활자화할까 궁리한다. 그 한 번의 결심을 기어코 연장해온 것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한때의 결심이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나약해 보여 싫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오기였지만 나는 그것으로 이렇게 지면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누구나 새해의 결심을 한다. 그것은 끊었다 피우는 담배처럼 한때의 노력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꿈을 이루고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미래의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의 자신뿐이다. 또한 오늘 내가 무엇인가를 적으면 내일의 나는 그만큼 달라진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5년 전 결연했던 나를 떠올린다. 모든 이들이 신년을 맞이한 지금의 마음으로 무궁하게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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