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에 사는 고등학생 정 모(17)씨의 하루는 고달프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완벽한 화장을 해야 한다. 피부는 하얗게 칠하고, 순하고 커다란 눈을 만들기 위해 눈 화장도 꼼꼼히 한다. 한창 성장할 나이지만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 정씨의 키와 몸무게는 164cm 에 52kg이지만 스스로 여전히 뚱뚱하다고 여긴다. 정씨는 “또래 여자 아이돌 몸무게인 45kg까지 감량하는게 목표”라며 “겨울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성형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0대 여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외모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12일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아동 및 청소년의 비만율은 14.1%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하지만 2015년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교육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체질량 지수 85%미만인 마른 여학생들 중 34.7%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날씬한 여학생 10명중 3.5명이 자신의 신체를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최근엔 다이어트는 물론, 화장과 성형도 요즘 여학생들에겐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소속 녹색건강연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색조 화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여학생의 비율은 중학교 73.8%, 고등학교 76.1% 의 비율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나안재(40)씨는 “예전에는 화장이 소위 ‘날라리’ 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모범생들도 화장을 한다” 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성장기에 뼈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지만, 확실히 대부분의 병원에 미성년자 손님들이 점점 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걸그룹들의 영향도 적지 않다. 10대 소녀들의 이미지가 대중 매체의 여자 아이돌들의 이미지로 고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 학회에서 지난해 발표한 ‘외모를 강조한 대중매체의 과다 노출이 여자 청소년의 신체 이미지와 자아 존중감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대중 매체를 자주 접하는 여학생들일수록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여학생들도 ‘소녀’라는 단어를 들으면 피부가 하얗고 날씬한 여자 아이돌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대답했다. 서울 정릉에 사는 A모(17)씨는 “걸그룹들의 가녀려 보이는 이미지를 따라잡기 위해 피부는 하얗게, 볼은 더 분홍빛으로 화장을 한다. 청초하고 마른 몸의 소녀 이미지를 갈망하지 않는 여학생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여학생들도 적지 않다. 청소년 인권행동 단체 아수나로 활동가는 “최근 획일화된 소녀 이미지에 반발하는 여학생들이 늘면서 아수나로도 서울 지부에서 여성 청소년 단체를 따로 만들고 꾸준히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SNS 등을 통해 내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들이 개선되기 위해 미디어와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엔터테인먼트 쪽 종사자들이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속사들이 걸그룹 연습생들을 정상 체중 미만으로 다이어트 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법적인 제재도 필요할 것” 이라고 말했다.
유지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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