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배워야”… 인도네시아ㆍ말레이 열풍
인도네시아의 유력 마케팅 컨설팅 회사 마크플러스는 최우수 직원을 선발해 미국 명문 경영전문대학원(MBA) 유학길에 오르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만만치 않은 지출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내 인력의 해외 비즈니스스쿨 진학을 지원해 온 데는 외부 환경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글로벌 트렌드와 서구식 경영 기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인도네시아 산업계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헤르마완 카르타자야 마크플러스 창업자 겸 회장은 “글로벌화, 디지털화의 거센 물결 속에 인도네시아 기업인들은 최신 비즈니스 동향과 경영 이론에 목말라 있다”라며 “인도네시아 유명 대학과 공동으로 최고경영자 MBA과정을 개설하고 매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켈로그 비즈니스 스쿨 교수 등의 초빙 강의를 진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5%라는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동남아시아에 최근 MBA 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동남아의 주요 민간기업, 외국계기업 등을 중심으로 전문 경영인 양성을 목표로 내세운 MBA 프로그램을 탐색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는 것. 외국 자본 및 인력 유입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경쟁 환경과 맞닥뜨린 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영 흐름과 기법을 학습하는 데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 붙인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동남아에는 세계 무대에서 어깨를 견줄 만한 기업들이 질적, 양적으로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학계에서는 동남아 대부분 지역에 뿌리내려온 폐쇄적인 가족 중심 비즈니스 관행을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하지만 경제 발전 속도에 비례해 해외시장으로의 노출이 일상화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가 반영된 선진 경영 수업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다. 북미, 유럽 등에서 유수의 MBA 과정을 마친 현지 재벌 2, 3세들이 귀국 후 동남아 디지털 경제 열풍을 이끌고 있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동남아 MBA 교육 붐의 선두 주자는 단연 싱가포르다. 아시아의 강소국답게 세계적 수준의 비즈니스 스쿨들을 앞세워 일찌감치 동남아를 넘어 지구촌의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유일하게 글로벌 MBA 랭킹 상위 100위권에 비즈니스 스쿨 세 곳이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이웃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싱가포르에 아시아 캠퍼스를 둔 인시아드(INSEAD)가 대표적이다. 인시아드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발표한 ‘2017 글로벌 MBA 랭킹(Global MBA Ranking)’에서 미국, 영국의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하며 주가를 높였다. 여기에 각각 24위, 26위를 기록한 난양 비즈니스 스쿨과 싱가포르 국립대 비즈니스 스쿨 또한 역내 MBA 교육 수요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비해서는 갈 길이 멀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MBA 열기가 조금씩 뜨거워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에서는 서구 비즈니스 스쿨들과 손잡고 선진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학사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신생 MBA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IPMI 국제 비즈니스 스쿨은 호주 멜버른 대학 비즈니스 스쿨, 프랑스 오덴시아 낭트 경영대학 등과 복수 학위 협정을 맺고 글로벌 경영 분야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지난 2015년 미국 MIT 슬론 비즈니스 스쿨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실무 중심 교육 과정을 선보인 아시아 비즈니스 스쿨 등이 눈길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를 예외로 한다면 동남아 MBA 교육 시장은 초기 단계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MBA 학업에 수반되는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이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비즈니스 스쿨의 존재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일정 궤도에 올라서고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해질수록 비즈니스 스쿨을 찾는 발길은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실제 동남아 고유의 가족 기업 사례를 연구하는 한편 스타트업, 핀테크, 전자상거래 등 역내 디지털 경제를 조망하는 서구 MBA와 차별화되는 커리큘럼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기지개를 켜고 있는 동남아 MBA 교육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방정환 아세안 비즈니스 센터 이사 /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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