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문회의는 모두 세종서만 열려
“괘씸죄 적용될라” 불안감에
해직근로자 대부분 출석
가뜩이나 생계 어려운데
일당에 교통비까지 날려
“지역순회심판 운영해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세종까지 오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부르는데 안 가면 불리한 결정이 나올까 일도 접고 가야 했습니다.”
강모(38)씨는 지난해 인천의 제조업체에서 해고를 당한 후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부당해고 결론이 났으나 사측이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재심을 받았다. 그는 “재심에서 힘든 일 중 하나가 세종의 중노위까지 가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노위의 처분에 대한 재심을 담당하는 중노위는 기일을 정해 심문회의를 여는데, 여기에는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가 출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직이 길어지면서 에어컨 설치 보조기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탓에 하루를 꼬박 들이는 세종 행(行)을 위한 일정 조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씨는 “일당 8만원을 날리고 교통비는 교통비대로 든 것도 문제지만 여름이라 일이 밀렸는데 민폐라면서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해고 등으로 가뜩이나 생계가 어려운 근로자들이 중노위의 부름에 세종까지 가느라 더 큰 곤란을 겪고 있다. 28일 중노위에 따르면 지난해 다뤘던 재심 사건의 절반에 달하는 52.4%(1,136건)이 서울과 경기ㆍ인천 등 수도권 소관이었지만, 심문회의는 모두 소재지인 세종에서만 열렸다. 심문회의는 장소뿐 아니라 날짜와 시간 역시 중노위가 정한다. 물론 불가피하다면 일정을 연기하거나 불참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엔 ‘괘씸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어 대부분의 신청인들이 이를 꺼린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무사는 “중노위는 법원이 아니라 위원들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커 불출석하거나 대리인을 보내면 안 좋게 봐 웬만하면 본인이 출석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까지 가는 수고를 들이기가 부담스러워 아예 재심신청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 올해 초 부산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방적인 해고를 당해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던 한윤경(27)씨는 “부당해고로 인정을 받자 사장이 바로 재심신청을 했는데, 알아보니 재심을 위해서는 세종까지 가야 하는 등 과정이 복잡하더라”면서 “부산에서 교통비만 10만원 정도 드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복직을 해봤자 좋게 지내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교통비 문제는 중노위 내부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전체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들의 80.6%(133명)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어 이들에게 지급된 교통비만 지난해에 7,056만원에 달했다.
반면 중노위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세종에 자리를 잡은 다른 기관들은 ‘지역순회 심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무총리실 소속 조세심판원은 세종으로 이전한 이후 수도권을 비롯해 영ㆍ호남과 강원지역 등을 방문해 심판회의를 열어 매년 1,000여 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중노위 역시 이들 기관처럼 신청인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중노위 관계자는 “회의를 개최할 만한 장소가 없어 지역순회 심판을 개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