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가 졸속으로 추진된 정황이 확인되면서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일본이 출연한 10억엔(약108억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일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10억엔 중 44%를 사용한 상황이어서 출연금 반환에는 피해자들의 의사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28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은 지난해 9월1일자로 화해·치유재단에 전액(약 108억원) 입금된 후 현재까지 44%(약 47억원)가 사용됐다. 합의일 기준 47명의 생존 피해자 중 34명에게 1억원씩 34억원, 사망 피해자 199명 중 58명에게 2,000만원씩 11억6,000만원을 지급해 위로금으로 총 45억6,000만원이 쓰였고 재단 운영 경비와 인건비 등으로 일부 지급됐다.
그 동안 일본 정부는 10억엔이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 성격으로 출연한 것이라고 강조해왔지만, 위안부 합의 점검 태스크포스(TF)의 발표 이후 이는 무색해졌다. TF에 따르면 10억엔은 객관적인 산정 기준에 따라 액수를 정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로부터 액수에 관해 의견을 수렴한 기록도 없다. 피해자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10억엔을 덜컥 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기억재단, 나눔의집 등 피해자 단체들은 10억엔을 우선 반환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데다 일본정부에게 법적 책임의 면죄부를 준 만큼 10억엔 반환의 근거가 더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합의일 기준 생존 피해자 47명 중 9명은 여전히 위로금 수령을 거절하는 상황이다. 윤미향 정의기억재단 상임이사는 “외교 문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부터 해야 한다”며 “합의 무효화를 입증하고 일본 정부에 당당한 요구를 하기 위해선 우리 정부가 10억엔을 반환하는 게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정해진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법적으로 보면 10억엔 반환이 곧 합의 파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10억엔이 합의의 산물이긴 하지만 반대 급부가 없는 출연금이어서 합의 유지나 파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미 위로금을 수령한 피해자들이 반환할 의무도 없다.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합의 초안 표현은 일본의 출연금이지 위로금이나 배상금이 아니어서 이 돈의 법적 의미는 공공사업 목적으로 지출된 돈으로 봐야 한다”며 “합의 파기나 재협상이 이뤄져도 출연금 자체는 일본 정부의 출연 목적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 지급됐고 용도에 맞게 사용된 만큼 피해자들에게 반환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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