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등촌동 철거 공사장서
굴삭기 올리던 크레인 넘어져
버스 승객 1명 사망ㆍ15명 부상
“지반 약한 곳” 사고 경위 조사
타워크레인 일제점검 둘째 날에
대상서 빠진 이동식크레인 사고
공사장 크레인이 또 무너졌다. 이번엔 이동식 크레인이 시민을 덮쳤다. 서울 강서구 공사장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꺾이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승객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9일 용인시, 18일 평택시에 이어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 사망 사고로, 전국의 고정식 타워크레인이 일제점검을 받은 지 이틀 만에 대상에서 제외된 이동식 크레인이 사고를 낸 것이다.
28일 오전 9시40분쯤 등촌동 5층 건물을 철거하던 70톤 이동식 크레인(최대 길이 50m)이 넘어져 팔에 해당하는 부위가 꺾이면서 공사장 너머 직선거리 30m가량 떨어진 중앙버스차로에 정차 중이던 650번 시내버스를 강타했다. 사고 당시 크레인은 옥상으로 5톤짜리 굴삭기를 매달아 올리던 중이었다. 버스에는 운전기사 및 승객 17명이 타고 있었으며 유리창이 부서지고 차체가 찌그러지는 충격이 가해지면서 운전기사를 제외한 승객 16명 전원이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특히 하차를 위해 서 있던 승객 두 명은 두부출혈 등 중상으로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서모(53)씨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사고 현장 건너편 주유소에서 근무 중이던 김현석씨는 “굴삭기를 옥상에 올리다가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크레인이 넘어가 버스를 내리쳤다”고 말했다. 크레인에 매달렸던 굴삭기도 도로 중앙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이로 인한 추가 사고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쓰러진 크레인이 왕복 8차선 도로 절반을 가로막으면서 등촌삼거리에서 강서구청사거리에 이르는 공항대로 일대는 극심한 차량 정체가 빚어졌다. 오후 4시쯤 크레인 해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사고 충격으로 공사장 가림막이 도로 쪽으로 휘어지는 등 붕괴 위험으로 작업 속도는 더뎠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소방당국은 현장 브리핑에서 “크레인이 건축 폐기물 등 지반이 약한 곳에서 작업 중이었다. 또 다시 쓰러질까 우려될 정도“라고 밝혔다. 무리한 중량을 들어올리다, 지반이 흔들리면서 크레인이 쓰러졌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은 합동 현장감식을 통해 보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
강서경찰서는 크레인 기사 A씨와 공사현장 관리자 B씨, 버스 기사, 목격자 등을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연식이 오래된 노후 크레인을 공사에 투입하는 등 정황이 파악되면 관련자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입건할 방침이다. 크레인 기사는 이미 피의자신분으로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시공사, 시행사, 하도급 업체 등 관계자를 전부 조사해 안전관리 책임 여부를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에 이영철 민주노총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크레인 사고는 대부분 안전하지 않은 지반 위에서 무리한 작업을 요구해 발생한다”며 “건설 현장에서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9일 경기 용인시 고매동 물류센터 신축 현장에서 부러진 고정식 타워크레인이 지상으로 추락해 근로자 3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으며, 18일 경기 평택시 칠원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고정식 타워크레인이 주저 앉으면서 근로자 한 명이 추락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타워크레인 사고로 사망한 인원은 2015년 1명에서 올해 16명(이번 사고 제외)으로 급증했다. 정부는 지난달 종합대책을 발표, 27일부터 전국 500개 건설현장 고정식 타워크레인에 대한 일제점검을 시작했지만, 이날 사고가 난 것과 같은 이동식 크레인은 점검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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