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은 대형 로펌 변호사나 기업 대관 담당자와 카카오톡만 해도 그 내용을 서면으로 보고해야 한다. 전관예우와 부정청탁의 빌미를 제공해 온 부적절한 만남을 차단하겠다는 취지지만, 보고하지 않아도 확인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 논란도 일고 있다.
공정위는 28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훈령)’을 제정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한국판 ‘로비스트 규정’인 셈이다. 정부 기관 중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곳은 공정위가 처음이다.
고병희 공정위 경쟁정책과장은 “내년 1월 시범운영을 해 본 뒤 미비점을 보완해 2월부터 정식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 과정에선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이 2015년 삼성그룹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된 공정위 내부 논의 과정 등을 당시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위원장을 포함해 공정위 모든 직원은 외부 인사와 접촉 시 5일 안에 상세내역(내용ㆍ일시ㆍ장소 등)을 감사담당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보고 의무가 부여되는 외부인은 ▦기업이나 로펌으로 이직한 전직 공정위 출신 인사 ▦대형로펌(연간 거래액 100억원 이상) 변호사ㆍ회계사 ▦기업 대관 담당자 등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미 보고 의무 외부인 명단을 만들었다”며 “공정위 출신이 100여명, 로펌 소속 변호사ㆍ회계사가 250여명”이라고 전했다. 대면 접촉은 물론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 통신수단을 통한 비대면 접촉도 모두 보고 대상이다. 다만 경조사나 토론회 등 사회 상규상 허용되는 범위의 접촉은 예외가 인정된다.
외부인이 ‘외압ㆍ청탁’을 시도한 행위가 확인되면 해당 인사는 1년간 공정위 직원과의 접촉이 금지된다. ▦조사계획ㆍ방향ㆍ내부검토 의견 등 조사정보 입수 ▦사건처리 방향 변경 및 처리시기 조정 ▦사건처리 방해 ▦접대ㆍ선물 등 부정청탁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 시행이 곧장 전관예우와 부정청탁 근절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일단 제도의 허점이 적잖다. 공정위 직원이 외부인을 접촉한 후 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공정위 관계자도 “공정위 직원이 접촉 사실을 숨기면 이를 적발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더구나 명목상 업무 관련성만 없다면 대기업ㆍ로펌 관계자가 공정위 직원을 접촉하는 것은 여전히 제한이 없다. 이동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외부인과의 접촉을 전면 금지하고 필요한 의견 전달은 서면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게 맞다”며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나 의뢰인이 판사를 쉽게 만나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위 송무담당관을 지낸 이호영 한양대 교수는 “외부인 접촉을 너무 광범위하게 억제하면 공정위 직원들이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갈라파고스 정책’(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정책)을 펼 가능성도 있다”며 “특정 사건 관련 외부인 접촉만 제한하는 등 범위를 좁히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전날 밤 출입기자들에게 “제가 기자를 접촉해도 보고 해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의무대상도 아닌 언론과의 만남을 서면으로 남길 경우 ‘언론 통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공정위는 이날 오전 이 같은 방침을 철회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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