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은 당위인 만큼이나 난제다. 절대시간 단축이라는 근대적 과제와 고용관계로부터의 탈주라는 탈(脫)근대적 과제가 중첩된 이중과제인 데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인식 수준도 낮기 때문이다. 영국의 역사가 E.P.톰슨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를 시간에 ‘맞선’ 투쟁에서 시간에 ‘대한’ 투쟁으로의 진화로 분석했다. 전자가 강제적 장시간 노동과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한 근대적 저항이라면, 후자는 일과 삶의 균형을 달성하고 나아가 종속적 작업장으로부터 탈출을 도모할, 시간에 대한 탈근대적 인식을 획득하는 일이다.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1931-1985)에 주목하는 이유는 노동시간 단축의 이중과제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벤저민 허니컷은 시간단축, 고용확대, 소득보전, 노사의 인식의 측면에서 그 핵심을 잘 포착하고 있다(‘8시간 vs 6시간’ㆍ이후). 브라운 사장 등 당시 켈로그 경영진은 오랜 숙의 끝에 8시간ㆍ3교대제를 6시간ㆍ4교대제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했다. 시간 단축은 강도 높은 노동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추가 고용을 통한 4교대제로 이를 사전에 방지했다. 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감소 역시 12.5%의 임금인상을 통해 그 일부를 보전했다. 대신 초과노동에 대한 수당을 없애고(당시 미국은 공정노동기준법이 제정되기 전이었다) 초과생산에 대한 수당으로 대체함으로써 성과보상책을 마련했다. 노동은 소득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더 많은 동료와 넓은 연대를 확보했고, 자본은 공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응해 자기 나름의 ‘해방적 자본주의’라는 경영철학을 실험했다.
이 거대한 시도는 2차 세계전쟁을 거치면서 시련을 맞게 된다. 전시정부는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했고, 켈로그 역시 8시간 노동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전시라는 예외상황이 종료되면 6시간 노동제를 다시 시행할 것을 노사는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전면적 회복은 이뤄지지 못했다. 경영진이 바뀐 탓도 크지만 장기근속자를 중심으로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노동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6시간 노동제의 전면적 회복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은 소수의 매버릭, 즉 이단자로 매도되기 시작했다. 새 경영진은 물론 지역사회도 이들을 게으른 자로 비난했고, 임금소득을 중시한 노동조합은 6시간 노동제에 대해 형식적 동의만을 표할 뿐이었다. 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켈로그의 매버릭들은 6시간 노동제를 50년이나 지켜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시간과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매버릭들은 금전적 소득보다 작업장의 지배에서 벗어난 시간의 가치가 소중함을 깨달았다. 자본의 소비복음주의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소비로 채우는 거짓 행복 대신 가족과 시민 동료를 얻었다. 시간에 ‘대한’ 투쟁을 통해 자유를 새롭게 인식하고 삶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다.
켈로그 사례에 비춰보면 우리 상황은 난감하다.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한계 부문이 널리 분포해 있고, 고위험의 작업은 비정규직에게만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전근대적 상황이 겹쳐 서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과로를 끊임없이 욕망한다. “요즘 바쁘지요”라는 과로의 정도를 묻는 인사가 일상이고, 사회적 위계 역시 일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이쯤이면 과로는 자발적 욕망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기호-자본이다. 노동조합과 기업을 보면 절망적이다. 임금 욕망에 사로잡혀 노동시간에 대한 인식이 모자란 노동계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직원 사찰로 물의를 빚은 한 재벌기업은 느닷없이 7시간 노동제를 도입한다고 하니 의아할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피하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빈곤한 노동철학 때문이다. 자유에 대한 탈근대적 기획이어야 할 노동시간 단축이 이해득실의 문제로 자꾸 왜소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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