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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소심 남녀에 보내는 응원 “새해에는 마음 조심하세요!”

입력
2017.12.28 14: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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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는 예민한 더듬이가 엉키지 않도록 예의라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부디 마음조심들 하세요!” 웅진주니어 제공
사람들 사이에는 예민한 더듬이가 엉키지 않도록 예의라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부디 마음조심들 하세요!” 웅진주니어 제공

마음 조심

윤지 지음

웅진주니어 발행 48쪽 1만2,000원

주변에 왜 이리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어떻게 대처해야 서로 맘 편히 지낼 수 있을까?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가족, 나를 표적 삼아 괴롭히는 직장상사, 시기와 질투로 뒤통수를 치는 내 오랜 친구... 세상은 무례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맡은 일을 해내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소박한 삶을 바라지 않았던가.

서점에는 자기계발서 외에도 현대인들의 다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한 에세이와 지침서들이 수두룩하다. 성공을 위해 대인관계의 비법, 효율적인 시간 활용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들이다. 목표를 정하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언젠가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능동적이고 용감해지라고. 소심한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휘둘리고, 상처받으며 성공하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마음 조심’의 주인공은 보통사람보다 조금 느리고, 잘 놀라는 소심한 소라게다. 알람 소리에 놀라 깬 주인공의 바쁜 출근길은 낯선 사람들과 차들로 혼잡한 거리를 나서는 것부터가 힘겹다. 어렵게 올라 탄 만원 지하철, 밀리고 밟히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보면 영혼마저 빠져나갈 지경이다. 운 좋게 바로 온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보기 좋게 새치기를 당한다. 화도 못 내고 오히려 상대방을 최대한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겨우 늦지 않게 도착한 사무실, 상사의 고함소리에 주눅 들고, 전화기너머 상대방은 목소리가 작은 걸 핑계 삼아 불같이 화를 낸다. 소라게는 당황하고 놀란 나머지 껍질 속으로 꽁꽁 움츠러든다. 직장 상사는 ‘그런 식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겠냐!’며 다그친다. 하지만 ‘그럴 때도 있는 거예요. 힘내요’라며 건네는 동료의 물 한 잔에 소라게는 겨우 다시 기운을 차린다.

퇴근길에 비슷한 친구들인 거북이, 게, 달팽이, 조개를 만나 회포를 풀어본다. 대범한 척 으스대던 친구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소심한 녀석이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 할 수 있기에, 마음 조심하라고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마음 조심’은 새로운 조형성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무심하게 표현한 일반 사람들과 달리 소라게, 달팽이, 고슴도치 같은 작은 동물들로 소심한 사람들을 분류했다. 만화적인 화면 구성은 상황을 생동감 넘치게 연출한다. 내용은 소심한 이들의 이야기지만 시각적으로는 리소프린트 같은 강렬한 형광색을 적절히 사용한 새롭고 과감한 그림책이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켜온 것은 걸출한 영웅이나 용감한 리더들의 힘만이 아니었다.

상식과 약속들을 지켜내는 조심스런 발걸음들이 쌓여 길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예민한 더듬이가 엉키지 않도록 예의라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소심한 이들에겐 이 ‘적당함’이 산소처럼 너무나 절박하다.

조용히 외쳐본다, 못 들으면 어쩔 수 없고.

“새해에는 부디 마음조심들 하세요!”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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