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 이지만 사람들은 1%의 영감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1%의 영감을 얻는 것이 힘든 일지만 99%의 노력 역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노력이란 단어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이유 없는 반감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을 이겨 냈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그들은 ‘도전’했고, 이를 지켜 내며 새로운 시장을 구축해 낸 화장품 기업들이 있다. 세상의 고정관념과 경쟁사들의 부정적인 시각 속에서도 1%의 영감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며 성공이란 이름을 만들어 낸 화장품 기업의 역사를 따라가 보자.
세계 화장 문화를 바꾼 ‘쿠션 화장품’
2008년 국내 화장품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비비크림이 독일의 블레미쉬밤을 업그레이드해 한국형 화장품을 탄생시켰다면 같은 해 탄생한 아모레퍼시픽의 쿠션 화장품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화장품을 한국에서 탄생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선밤과 비비크림 등의 열풍으로 모든 화장품 브랜드들이 해당 제품에 주목할 때 아모레퍼시픽은 선크림과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등 기초 메이크업 제품을 특수 스펀지 재질에 흡수시켜 팩트형 용기에 담아낸 멀티 메이크업 제품을 만들어냈다.
쿠션 화장품은 처음 제품이 개발되어 출시될 당시 선반과 비비크림에 가려 아무에게도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지속적인 연구와 지적재산권 확보를 통해 2012년 이후 국내는 물론 전세계가 주목하는 쿠션 화장품을 탄생시켰다.
브랜드숍 화장품 전성시대를 열다
2002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 브랜드숍 미샤가 탄생했을 당시, 국내 화장품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만 해도 고가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화장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 성공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또한 단독 브랜드의 화장품만을 판매하는 로드숍의 성공을 낙관한 이도 많지 않았다. 앞서 해외에서 일본의 유명 브랜드가 비슷한 컨셉의 매장으로 실패를 했고 국내에서도 한번 도전했다 실패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샤는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이겨내고 “화장품이 이렇게 비쌀 필요가 없다”는 합리적인 소비문화를 만들어 냈다. 또한 이후 다수의 화장품 기업들이 화장품 브랜드숍 사업에 뛰어들면서 국내 화장품 시장에 주력 유통 중 하나인 화장품 브랜드숍을 있게 한 시작이 되었다.
화장품 업계에 OEM 시장 개척
1990년 설립된 한국콜마는 국내 최초로 의약품에 사용되던 GMP를 화장품에 도입해 오늘날 식약처가 지정하는 CGMP 지정 업체의 초석을 만든 기업이다.
또한 화장품의 단순 수탁 제조 방식인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을 직접 해당 브랜드를 개발해 역으로 권하는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으로 처음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제조전문기업이 제품, 또는 브랜드를 직접 개발해 브랜드사에 역 제안하는 방식인 ODM은 국내 화장품 시장이 성장하는데 큰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시장에 국내 제조기술 알리다
코스맥스는 국내 화장품 전문제조사 가운데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2004년 중국에 법인을 설립했다. 당시 누구도 국내 화장품 전문제조사가 중국에서 큰 성공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스맥스는 중국에 50년, 100년 뿌리 내릴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친 결과 중국에서 매년 40% 이상의 성장세를 만들어 내며 2016년 상하이와 광저우의 매출을 합해 약 2,8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코스맥스차이나는 현재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하여 올해 연간 약 6억개 수준의 생산 능력의 확보하여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 주문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무방부제 멸균 화장품
모든 화장품 기업들이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 때 넥스젠바이오텍은 방부제 없이 화장품을 만들 수 없을까라는 고민으로 무방부제 멸균 화장품을 개발했다.
그런 노력 끝에 무방부제·멸균 처리, 1회용 패킹이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무방부제 멸균 화장품을 개발했으며 더 나아가 정체모를 식물추출물 대신 사람의 세포와 유사하게 구성한 인공세포배양액(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으로 조성)과 세포 자체의 재생력을 되살릴 수 있는 각종 성장인자 단백질을 조합한 신소재를 개발해 국내 화장품 기술의 진일보를 선도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대한민국 화장품의 도전
70여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도 국내 화장품 업계에는 도전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역사를 만든 제품들이 많다.
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가 1997년 국내 최초로 레티놀 안정화를 통해 선보인 ‘레티놀 2500’을 시작으로 1999년 LG의약품바이오텍 연구소와 화장품 연구소가 공동 개발한 ‘주름 개선 신물질 메디민 A’를 적용한 제품으로 처음 출시된 이자녹스 ‘링클 디클라인’, LG생활건강이 2006년 국내 화장품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밤 형태의 자외선차단제 ‘선밤’ 등은 대표적인 제품이다.
이외에도 2000년대 초반 투스텝 마스크팩으로 아시아에 마스크팩 대중화를 이끌어 낸 메디힐과 리더스, 아이패치로 화장품 한류를 만들고 있는 뷰티엔누리, 화장품 매장으로 시작한 대표가 론칭해 캐릭터 화장품의 대표주자가 된 파시, 블러거가 론칭해 한류 화장품으로 성장한 파파레서피 등도 대표적인 중소기업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도 의사가 직접 개발에 참여해 진정한 의미의 코스메슈티컬 화장품 대중화에 성공한 울트라브이의 ‘이데베논 앰플’과 순수 비타민 C 제품이 아침에는 쓸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2015년 론칭 이후 현재 누적매출 750억원, 재구매 고객 9만 5,000명이라는 진기록을 세운 리즈케이의 ‘프리미엄 퍼스트 C 세럼 퓨어 비타민C 13%’ 등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지흥 뷰티한국 기자 jh9610434@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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