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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2017년 패션계는 변화를 시작했다

입력
2017.12.27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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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라발 그룽(Prabal Gurung) 인스타그램
출처= 프라발 그룽(Prabal Gurung) 인스타그램

디자이너 브랜드를 로고만 붙여 비싼 가격에 팔아먹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지만, 패션 업계는 그렇게 녹록한 곳이 아니다. 티셔츠를 수십만 원에 팔려면 제작, 완성도부터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쌓아 둬야 할 것들이 잔뜩 있기 마련이다. 또 끊임없이 움직이는 트렌드 속에 정해지지 않는 미래를 향해 모험을 해야 하는 법이다.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누군가 등장해 변화를 주도하고 또 누군가는 어느새 잊혀져 간다. 2017년은 큰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였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되돌아 본다.

무엇보다 스트리트웨어가 본격적으로 하이 패션 트렌드를 이끌기 시작했다. 몇 년 전쯤 지방시나 겐조는 로트와일러나 호랑이, 1880년대의 헤비메탈 그룹이나 SF 고전 영화가 생각나는 프린트를 그려 넣은 스웨트셔츠와 니트를 선보이며 스트리트 패션의 ‘방식’을 가져다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이제 이런 이용을 넘어 스트리트 패션 그 자체가 하이 패션이 되고 있다. 발렌시아가, 구찌와 쉐인 올리버와의 협업으로 선보인 헬무트 랑의 컬렉션은 이런 고전적인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힙합 뮤지션인 카니예 웨스트나 리한나의 펜티,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는 스트리트웨어의 정신으로 파리나 뉴욕의 패션위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강해진 정치적 메시지다. 오랜 기간 펑크, 힙합 등 거리 패션은 사회 하부의 젊은이들과 함께 숨을 쉬며 세상을 향한 불만을 비롯한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했다. 하이 패션은 그런 움직임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이 패션 구매자는 대부분 기성 사회 구조의 수혜자들이었고, 그러므로 변화를 바랄 이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 '오프 화이트' 인스타그램
출처= '오프 화이트' 인스타그램

하이 패션의 구매자 폭이 넓어지고 특히 젊은 사람들이 주요 구매자로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많은 문제들에 있어 사실 하이 패션 산업이 그 당사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종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패션을 만들어 내고 또한 그걸 입고 있다.

페미니즘이나 LGBT 등 젠더 문제, 그리고 인종 문제는 올 한 해 세계적 이슈였고 패션도 그런 이슈에 참여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디올과 프라발 그룽, 제레미 스콧의 패션쇼에는 슬로건을 적은 티셔츠가 등장했고, 그런 메시지가 닿는 범위는 예전에 비해 훨씬 넓어졌다. 모델의 직업 환경 등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 모델 보호 법안 마련을 비롯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들은 앞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하이 패션이 어설프게 상류 계층을 흉내 내려 하지 않고 입는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옷과 패션쇼, 광고를 보면서 새로운 미감에 익숙해 지고 있다. 앞으로는 고전적 럭셔리와는 상당히 다른 패션을 원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하이 패션은 1980년대 들어 소비자들이 뒤섞인 이래 대상으로 상정해 온 소비자와 실제 구매하는 소비자를 혼동하는 과도기를 이제서야 지났다고 볼 수 있다.

내년을 향한 변화도 이미 시작되었다. 17년간 버버리를 이끈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내년 초에 버버리를 떠난다. 10년간 새로운 셀린느를 만들어 낸 피비 필로도 떠난다는 발표가 최근 있었다. 1997년 개점해 스트리트 패션과 하이 패션이 뒤섞인 대형 편집숍 트렌드를 이끈 파리의 콜레트도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폐점했다. 구찌와 발렌시아가, 캘빈 클라인에 이어 몽클레르와 J.W. 앤더슨, 코치 등은 내년 컬렉션을 남녀 통합으로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환경 문제를 이유로 전통적인 방식의 캣워크 패션쇼를 그만하고 디지털 영화를 상영하는 식의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e-커머스에 대한 투자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시대를 외면한 채 고고하게 과거를 고집하는 하이 패션 디자이너의 시대는 분명 지나갔다. 패션 역사책에서나 이름을 볼 수 있는 브랜드가 되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이 시대와 호흡하며 움직여야 한다. 내년엔 과연 어떤 패션이 변화를 주도해 나갈지 기대된다.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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