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읍내 뒷산인 백화산(284m)에 오르면 태안반도의 지형이 대충 파악된다. 발 아래로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끝자락으로 서해 바다가 푸근하게 이어진다. 맞은편으로는 태안반도 북측의 좁은 땅덩어리가 섬인 듯 이어진다. 리아스식 지형으로 육지 깊숙이 파고든 물길이 호수를 연상시킨다. 559km에 달하는 해안선과 바다는 태안의 보물이자 먹거리 창고다. 태안은 일제강점기에 서산에 합쳐졌다가 1989년 분리했다. 음식과 정서가 서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산의 대표음식으로 널리 알려진 게국지와 어리굴젓도 실은 태안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이 주 재료다. 서해바다의 짭조름하고 싱싱한 맛이 어우러진 태안의 겨울 별미를 소개한다.
●박속밀국낙지탕은 태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속 음식이다. 이름에 재료가 모두 포함돼 있다. 조개를 우린 육수에 무 대신 얇게 썬 박속을 넣어 시원한 맛을 더한다. 여기에 살아 있는 세발낙지를 넣고 살짝 데쳐서 먹는다. 낙지를 다 먹고 난 다음 진한 국물에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한끼 식사로 든든한 ‘밀국’이 완성된다.
●우럭젓국도 태안과 서산 일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음식이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잡은 우럭을 소금으로 간해서 꾸덕꾸덕하게 말렸다가 가을이나 겨울에 시원하게 국으로 끓인다. 쌀뜨물에 먹기 좋게 자른 우럭 토막을 넣고 무 대파 청양고추 등을 넣어 끓이면 북엇국 못지않게 담백하고 구수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
●바다의 우유, 굴은 겨울이 제철이다. 태안 바닷가 어느 곳에서나 11월 초부터 이듬해 3월까지 싱싱한 굴이 생산된다. 태안에서는 식당 밑반찬으로 어리굴젓은 기본이고, 생굴ㆍ굴물회ㆍ굴무침 등 각종 굴 요리가 흔하다. 얼큰한 양념 국물에 오이 당근 양파를 채 썰어 넣고 새싹을 얹은 굴물회는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해삼물회도 별미다.
●태안에서는 꼼칫과의 바다 물고기인 물메기를 ‘물텀뱅이’라 부른다. 물텀뱅이탕은 겨울 낚시꾼들이 가장 사랑하는 메뉴다. 찬 바람 쌩쌩 부는 날 시원하고 뜨끈한 국물이 속을 든든하게 데워주기 때문이다. 주로 김치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지만, 태안에서는 얇게 썬 무와 미나리를 넣고 담백하고 맑게 끊이기도 한다. 태안의 대부분 항구와 시장에서 흔히 맛 볼 수 있다.
●가오리 새끼를 지칭하는 간자미 회 무침도 겨울에 즐겨 먹는다. 홍어와 비슷하게 생긴 간자미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가장 맛이 좋고 영양소도 풍부하다. 쫄깃한 살점과 무른 뼈를 통째 썰고, 채소와 매운 양념으로 버무리면 간자미 회 무침이 완성된다.
●꽃게는 겨울부터 봄까지가 제철이다. 이 시기에 잡힌 게는 다리마다 살이 꽉 차 있다. 태안의 꽃게장은 알이 꽉 찬 암게만 사용한다. 간장이나 매운 양념을 넣고 담근 꽃게장은 싱싱할 뿐만 아니라 색까지 고운 밥도둑이다. 매콤한 양념과 푸짐한 채소를 곁들인 꽃게탕도 단맛이 진하다. 태안 곳곳에 꽃게탕 전문식당이 많다.
●조갯살 모양이 새 부리를 닮은 새조개는 황금조개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귀한 겨울철 별미다. 일반 조개보다 씹는 맛이 좋아 주로 샤브샤브로 요리한다. 채소를 넣어 끓인 육수에 새조개를 넣어 10초 정도 데친 후 초고추장이나 간장에 찍어 먹는다. 남은 국물에 라면이나 국수를 넣고 끓여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태안=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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