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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강대국 권력정치의 부활과 중견국 외교

입력
2017.12.26 14:4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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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대 중러의 대결 양상 뚜렷해도

안보ㆍ경제이익 동시 추구해야만 해

소통과 정치권 공감대가 최우선과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가 공표됐다. 예상대로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서는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 등을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수정주의 도전세력으로 파악한 후 이에 대응해 국가안보와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선명하게 표방했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지구 공통의 문제들인 기후변화와 테러리즘 등의 위협요인에 대응해 국제기구 등을 통한 다자주의적 협력을 표방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힘을 중시한 대외정책 노선으로 전환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이미 2015년에 공표한 군사전략서와 2017년 11월의 제19차 당대회 연설 등을 통해 2050년대까지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중국의 꿈을 국가목표로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육군력뿐만 아니라 원양 보호전략을 추구하는 해군 건설 등의 강군 건설 방침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미중 간의 전략적 대립 구도가 재부상하는 가운데 일본의 아베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러시아의 푸틴 정부는 중국과의 군사훈련을 활발하게 실시, 미일동맹 대 중러 협력관계가 구조적으로 대치하는 권력정치의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7회의 외국 방문과 40여회의 정상회담을 통해, 강대국 권력정치와는 결이 다른 외교정책 방향을 제시해 왔다. 베를린 선언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 및 미사일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원칙을 표명했다. 중국 방문에서는 시 주석과 한반도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간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중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대칭전력 증강에 한미연합방위태세 강화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최근에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이후로 실시할 것을 미국 측에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외교노선은 격화하는 강대국 권력정치 속의 협력지향적 중견국 외교라고 할 만하다. 안보와 경제이익의 동시적 추구를 위해 미중 양국과의 협력관계 구축이 불가결한 한국의 지정학적 구도를 고려할 때, 그리고 두 달 뒤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협력과 참가 속에 치러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외교적 선택으로 보인다.

냉전시대와 달리 21세기의 강대국 관계는 일방적 대립 구도로만 볼 수 없는 협력적 양상도 내재해 있고, 국제사회 속의 한국의 위상도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정세 변화 속에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체제를 강화하면서도, 여타 강대국들과 중층적 협력 관계를 확대하는 주도적 외교를 전개하는 것은 불가결한 선택이다. 국제적 위상이나 국력 면에서 우리와 엇비슷한 위치인 오스트레일리아나 싱가포르, 캐나다 등도 우리와 유사한 중견국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다만 평화지향적 중견국 외교가 강대국 권력정치의 파고 속에서 제대로 성과를 거두려면 한층 노력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하드파워나 소프트 파워 등 국력 수준을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한국이 무시 못할 나라이고, 인적자원이나 문화적 매력 면에서도 중요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뚜렷이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미중일러 등 주요 국가들이 참가하는 국제협력과 대화의 장을 활발하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4~5년간 가동되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담의 재개는 중요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셋째, 중견국 외교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여야 정치권의 공감대 형성이 긴요하다. 무엇보다 여야 대표들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을 두고 서로 엇갈리는 모습만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결국 국내에서의 소통 강화가 중견국 외교의 성공을 견인하는 첫걸음인 셈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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