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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지구촌을 움직인 영웅] 반부패 넘어 반독재... 무소불위 권력 푸틴에 맞서다

입력
2017.12.26 08:4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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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러시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알렉세이 나발니(가운데)와 선거대책본부 직원들이 25일 모스크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방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2018년 러시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알렉세이 나발니(가운데)와 선거대책본부 직원들이 25일 모스크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방문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외형만 민주 국가인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권력은 반석 위에 놓여 있다. 주요 야권 인사들은 수시로 체포되고 일상적으로 당국의 감시를 당한다. 국가가 통제하는 방송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몇 안 되는 독립 언론인들은 ‘애국주의자’의 테러를 받아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다.

그럼에도 지난 3월에는 러시아 전국에 걸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패 혐의를 제대로 조사하라는 규탄 시위가 열려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푸틴 정권의 독재와 부패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부패 고발 영상을 공유하고 집회의 날짜와 장소를 정해 움직였다. 이들 ‘인터넷 세대’의 영웅이자 구심점은 오랜 반부패운동가에서 야권 최대 정치인으로 변신한 알렉세이 나발니(41)다.

나발니는 국영방송 출연이 금지돼 있다. TV에 나서지 못하는 대신 그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그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는 200만명이 넘고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계정의 구독자는 160만명에 이른다. 그가 유튜브에서 공개한 메드베데프 총리의 호화 저택과 고급 요트, 포도밭 등 재산 내역은 러시아 네티즌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저택 마당에 있는 호수에 오리를 위한 집까지 따로 지어 놓았다는 내용을 본 시위대는 네덜란드 작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의 캐릭터 ‘러버덕’ 인형을 들고나와 항의했다.

나발니의 지지 기반은 수년 전부터 인터넷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로즈네프트와 트랜스네프트 등 국영기업의 거래 내역을 샅샅이 뒤져 부패상을 고발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후원금이 쌓이면서 2011년 반부패재단(FBK)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운영에 나섰다. 기존 활동은 줄리언 어산지의 ‘위키리크스’와 흡사했지만, 현재 그는 ‘러시아의 버니 샌더스’다. 푸틴 대통령이 주연인 대선에서 조연에 머무르는 기존의 야당 지도자들과 달리 타협하지 않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류정치 세력에 편입하기를 거부하면서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타협하지 않는 반정부 운동의 대가는 가혹하다. 그를 돕는 반부패재단 직원들은 수시로 테러를 당하고 있다. 나발니 자신도 두 차례나 ‘녹색 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 3월 녹색 물감을 얼굴에 맞은 그는 “내가 미국 영화 ‘마스크’에 나오는 영웅처럼 보인다”라며 영상을 찍는 등 유쾌하게 대응했지만, 4월에는 신체에 해로운 성분이 섞인 물감을 맞고 오른쪽 눈을 실명할 뻔했다. 그의 남동생 올레크는 3년째 수감 중인데 이 또한 사실상 나발니의 활동에 대한 당국의 보복이라는 게 중론이다.

지난 24일 러시아 20개 도시에서 모인 나발니의 지지자 1만5,000여명은 나발니를 공식 대선후보로 추대했다. 물론 다음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발니가 횡령 유죄 판결을 받은 이력 때문에 후보 자격이 없다고 선언, 사실상 그의 대선 출마를 좌절시킬 강수를 던졌다. 당국이 늘 지지율 10% 남짓한 군소 후보라며 평가절하했던 나발니의 출마를 원천 봉쇄함으로써 오히려 그의 기세를 키워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발니는 선관위의 결정에 “대대적인 선거 보이콧으로 맞설 것”이라고 반발했다. 내년 러시아 대선도 푸틴의 4선이 확실시되지만 푸틴은 늙었고 나발니의 지지세력은 젊기에, 시간은 나발니의 편이다. 물론 ‘불행한 사고’가 없다면 말이다. 다른 유력한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는 2015년 암살당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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