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월 25일 인도 남부 파밀나두 주 나가파티남 시 외곽 킬벤마니(Kilvenmani, 일명 Kizhavenmani))에서 어린이와 여성 44명이 방화에 희생됐다. 희생자들은 달리트(Dalit)라 불리는 인도 카스트 최하층 ‘불가촉천민’으로, 인근 지주들의 논밭에서 농사를 짓던 이들의 가족이었다. 남자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 지주들이 고용한 깡패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 여성 노약자들이 한 오두막으로 피신하자 깡패들은 바깥에서 출입구를 잠그고 불을 질렀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시민 인권과 자유 평등의 열풍은 먼 땅 (옛) 식민지 곳곳으로도 파급됐다. 인도 독립의 영웅으로 칭송 받는 간디조차 외면했던 최하층 계급 달리트의 저항운동이 본격화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그들 뒤에는 인도공산당(CPI) 등 좌파정당이 있었고, 드라비디아니즘(Dravidianism) 즉 하층민 자존주의(自尊主義)의 자생적 인권이념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60년대는,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Norman Borlaug) 등의 기여로 농업 생산력이 급증한 ‘녹색 혁명’의 시대였다. 열악한 노동 환경, 참담한 임금 등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비인간적 처우에 맞서 달리트 농민들이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킬벤마니의 달리트 농민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은 파업을 벌였고, 수확물을 확보한 채 협상을 시도했다. 지주연합은 그들 일부를 해고하고, 마을 바깥에서 농업노동자들을 들여왔고, 폭력배들을 고용했다. 그들은 달리트 아이를 유괴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는데, 아이를 구출하면서 빚어진 폭력사태로 지주 측 고용자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빚어졌다. 방화는 그 일에 대한 보복이었다. 노인 5명과 여성 16명, 어린이 23명이 숨졌다.
범인 중 10명이 기소돼 1심에서 10년 형을 선고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전원 무죄로 풀려났다. 방화를 사주한 지주연합 대표(Irinjur Gopalakrishnan) 역시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고, 1980년 살해 당했다.
인도 인권단체인 ‘달리트인권캠페인(NCDHR)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약 6분의 1인 1억7,000여 만명의 달리트가 지금도 여전히 토지, 교육 등 거의 모든 사회적 자원으로부터 소외된 채 살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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