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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EU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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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EU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

입력
2017.12.24 15:1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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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트럼프는 중동의 현실을 잘못 해석했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국제사회 공감대를 단번에 날려버린 그의 최근 움직임은 중동 지역의 안정을 급속히 악화시킬 게 분명하다. 그런 만큼 유럽연합(EU)의 노력이 중요해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동맹 강화에 집중한다. 존 F. 케네디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 캐나다 또는 유럽을 첫 해외 방문지로 선택했다. 트럼프는 아니었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로 직행해 54개 이슬람 국가 정상회담에 참가하고 이란을 비방하는 선동적인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이스라엘을 방문해 또 다른 반(反)이란 수사법을 구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외교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미국 동맹국이며 이란을 공동의 적으로 두고 있다. 지난달 이스라엘 방위군 수장인 가디 아이젠코트(Gadi Eisenkot) 중장은 이란에 대항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정보 공유를 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젠코트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라는 제목의 사우디아라비아 출판물에서 “이 지역에 새로운 국제연합을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관계회복은 사우디 새 왕세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이 국내 및 외교정책의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살만 왕세자는 이달 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안을 제안한 것으로 소문이 났다. 살만이 사우디를 방문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이스라엘에 편향된 평화협상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 정부는 관련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부인했지만 이런 소문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트럼프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외교적 쿠데타를 제공하기를 분명히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결정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거나, 팔레스타인 문제 방어에 더 높은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딜레마에 직면하게 했다.

일부 사우디인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위에 대한 골치 아픈 문제를 제쳐놓고 싶어하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주권의 지리적 경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고 텔아비브에서 미국 대사관을 즉시 옮길 계획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중동 국가들의 반발을 부른 그의 선언에 새로운 뉘앙스를 추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중재한 경험이 있는 미국의 전 특사 마틴 인디크는 “예루살렘 문제가 워낙 뜨거운 감자여서 미국에 미치는 피해를 완전히 제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현실은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라고 발표한 직후 중동 전역에서 거리 시위가 분출한 데서도 엿보인다.

더 나아가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특별 정상회담을 열고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인정할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하는 한편 트럼프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했다. 무슬림은 예루살렘이 이슬람에서 세 번째로 성스러운 장소인 알아크사 사원(Al-Aqsa mosque)이 위치한 도시라는 사실을 결코 잊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의 결정이 발표됐을 때 “부당하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했고, 살만 국왕 또한 그의 결정이 알아크사 사원에 얼마나 해를 끼칠지에 대해 경고했다.

그럼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터키나 이란 같은 나라들과 관계개선을 꾀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우디는 지난 6월 카타르가 테러 조직을 지원하고 경쟁국 이란과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단교했다. 이에 맞서 카타르는 이란 터키와 교역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가 2002년과 올해 아랍연맹에 의해 승인된 ‘사우디 이니셔티브’라고 알려진 아랍평화 구상과 근본적으로 다른 계획을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협력해 팔레스타인에 압력을 가한다는 트럼프의 꿈의 시나리오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루살렘에 대한 아랍의 권리를 포기할 입장이 아니다. 둘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운명과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전략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유대인이자 트펌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지적했듯이 아랍-이스라엘 평화 정착 과정에서 역할을 맡은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정치가가 아닌 사업가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너무 광범위한 문제여서 사업 거래처럼 취급하기가 어렵다.

트럼프는 유엔이 승인한 두 국가 해결책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관에 마지막 못을 박을 태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평등한 경기장을 향해 일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EU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유엔 회원국 중 70% 이상이 이미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한 만큼 EU도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두 국가 해결책을 향한 길은 대안적이고 보다 점진적인 접근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이 1967년 이전 국경으로 후퇴한다면 이스라엘을 인정할 것이라는 아랍연맹의 아랍평화 구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유대인 민주주의 국가의 성격을 유지하고 팔레스타인 국가의 생존 능력을 보장하는 두 국가 해결책은 여전히 ​​아랍-이스라엘 갈등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해법이다. ⓒProject Syndicate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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