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목동병원에서 치료받던 신생아 4명이 집단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보건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사인(死因) 규명에 나선 가운데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역학조사와 부검을 통해 신생아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밝혀지더라도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밝혀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데다 전문분야에 속하는 의료사고를 비전문가인 경찰이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명확한 사망 원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조사팀에게 자문까지 받은 의료진을 상대해야 하는 경찰로서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최악의 경우 '사망 원인은 있고 책임자는 없는' 사태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점쳐지는 배경이다.
<strong>◇경찰 "사인 나와도 과실 입증 어려워…의료진 다 부른다"</strong>
경찰도 상대적으로 불리한 수사환경을 인정하고 '신중론'에 무게를 둔 모습이다. 사건 발생 직후 의료사고전담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6일이 지난 22일 오후에야 병원 관계자를 부른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라며 "사망원인이 특정 바이러스로 규명되더라도 의료진의 과실에 의한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러스가 수액을 통해 신생아의 체내에 흘러갔는지, 완전 정맥 영양(TPN) 약제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의료진의 비위생적인 손에 감염됐는지, 혹은 외부인의 출입으로 인한 것인지 등 다양한 변수가 있다"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조사를 받을 의료진을 상대로 과실을 입증하는 것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른바 '그물망 수사기법'을 선택했다. 핵심 조사대상인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진 조사 앞서 병원 관계자에 대한 외곽조사를 시작으로 과실을 저지른 특정 의료진으로 수사망을 좁혀가는 '장기전'에 돌입한 셈이다.
아울러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거나 신생아 중환자실 소속이었던 의료진 14명에 대한 내사도 동시에 진행한다. 앞서 경찰은 19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전산시스템실, 의무기록실, 의료진 사무실 등 총 10곳을 압수수색했다.
병원에서 압수한 신생아중환자실 인큐베이터 기기와 관리대장, 수액 세트·약물 투입기 등 의료기구, 신생아 의무기록, 의료진의 14명의 진료사무 수첩과 휴대전화, 병원 내 폐쇄회로(CC)TV 등을 총 4박스 분량의 자료를 압수하고 사망 신생아의 인큐베이터까지 확보한 경찰은 검체를 국과수와 보건당국에 보내 정밀감정을 받는 한편 압수품을 토대로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면 병원 의료진 전부를 불러 조사할 수 있다"면서 "언론에 알려진 '변 묻은 손으로 치료를 했다고 알려진 의료진'이나 '보호자 동의 없이 신생아에 모유 수유 임상시험을 했다고 알려진 조모 교수도 조사대상"이라고 귀띔했다.
<strong>◇전문가 "과실 입증 못 할 가능성 있다…구술조사·사인규명이 관건"</strong>
경찰의 신중한 노력에도 전문가들은 "의료과실 수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만큼 결국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할 가능성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갑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병원 내에서도 감염경로는 상당히 다양하다"며 "환자의 카테터(관), 도뇨관, 인공호흡기, 기관 내 튜브는 물론 신생아 중심정맥관을 통해서도 세균이 흘러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대학병원의 경우 신생아를 돌보는 의료진이 다수이고 감염병의 특성상 의료과실이 불분명한 데도 감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경찰이 의료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의료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고 원인이 확인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실제로 의료진 중 누가 잘못했는지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했던 전병율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도 "중환자실에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그 과정을 규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러 의료인이 수시로 오가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특성상 감염 시점을 추정할 수는 있어도 정확하게 규명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애초에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을 경찰에게 지우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의료진을 상대로 비전문가인 경찰이 의료과실을 입증하기란 상당이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교수도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신생아들의 감염 시점을 특정하는 것은 물론 그 원인이 의사의 과실에 의한 것인지, 과실이 있더라도 신생아의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을 모두 밝혀야 한다"면서도 "민사소송의 경우 병원을 상대로 환자가 완전히 승소할 경우는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보건당국이 밝혀낼 '원인'과 병원 관계자의 '구술증거'가 중요하다"면서 "의료진뿐 아니라 간호사와 약제사 등 최대한 많은 병원 관계자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역학조사를 담당한 보건당국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르면 다음 주 사망 환아 4명의 세균 및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배양검사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망 환아 3명의 검체를 확보해 재확인한 결과 고열을 동반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시트로박터 프룬디균(Citrobacter freundii)이 검출됐다고 밝힌 질본은 이 외에도 추가적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노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뿐만 아니라 뇌, 척수액, 복강액, 대변 등 검체에 대한 배양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홍정익 질본 위기총괄대응과장은 "이르면 다음 주쯤 검사를 마칠 것"이라며 "국과수에서 진행하는 조직검사 및 화학검사 등을 종합해 최종 사인을 규명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뉴스1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