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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유럽] 아일랜드ㆍ북아일랜드 국경에 ‘브렉시트 초소’ 다시 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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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유럽] 아일랜드ㆍ북아일랜드 국경에 ‘브렉시트 초소’ 다시 서나

입력
2017.12.22 2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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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2일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오렌지 오더(북아일랜드 신교도 정착 기념일)' 기념행사에 반발, 아일랜드 국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7월 12일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오렌지 오더(북아일랜드 신교도 정착 기념일)' 기념행사에 반발, 아일랜드 국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5월 11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 협상 대표 미셸 바르니에는 아일랜드의 자그마한 소도시 모너핸(Monaghan)을 방문했다. 모너핸에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까지는 불과 30㎞ 정도. 이틀간의 아일랜드 방문 일정 가운데 그가 이 지역을 찾은 이유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국경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영국과 아일랜드가 EU 회원국이기에 현재는 아무런 국경 통제가 없다. 당연히 초소도 없어 어디가 국경선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아일랜드의 도움을 받아 국경선에 도착한 그는 ‘이곳에 국경을 다시 설치하는 것을 반대한다’ ‘국경 지역은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EU 잔류 의견을 존중해 달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북아일랜드 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는 “이곳 국경문제의 특수성이 브렉시트 협상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라는 글을 곧바로 트위터에 올렸다.

지난 8일 영국과 EU 간에 브렉시트 1단계 협상이 합의됐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에 현재처럼 국경통제가 없음을 유지한다는 난제가 협상의 막판에 걸림돌이 되었다. 큰 논란 끝에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완전한 규정 일치를 이룬다”는 규정으로 봉합이 되었지만 이 문제는 내년도 브렉시트 추가 협상에서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EU의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게 브렉시트인데 이 두 가지가 국경 없는 EU의 가시적인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는 통관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국경통제도 재도입돼야 한다. 하지만 영국이나 아일랜드는 국경통제를 원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영국은 대안으로 모든 통관절차를 전산으로 처리하는 가상국경(virtual border)을 제시했으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루에도 3만명이 넘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국경을 넘어 상대편 지역 직장으로 출퇴근하거나 왕래한다. 지난해 기준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 연간 교역은 600억유로 정도. 영국은 아일랜드의 제1 수출시장으로 전체 수출의 17%를 차지한다. 대폭적인 규제완화와 우수한 인력 때문에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외국기업의 거래를 제외하면 이 비율은 44%에 이른다.

아일랜드가 ‘국경 통제 없음’을 유지하는데 사활을 거는 이유는 경제적 이해가 크게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대의 트럭이나 선박이 막힘없이 물건을 나르는데 만약에 국경통제가 도입되면 지체에 따른 손실이 매우 클 것이다. 추가로 인력도 필요하고 폐쇄된 국경초소도 다시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30년이 넘는 북아일랜드 유혈분쟁을 끝낸 북아일랜드평화협정(굿프라이데이협정)이 자칫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1차 대전 후 1921년에 독립했다. 이 당시 얼스터라고 불리는 북아일랜드 일부는 영국령으로 남았다. 1968년부터 본격화한 북아일랜드 유혈분쟁은 아일랜드와 통합하려는 공화국주의자, 영국에 잔류하려는 연합주의자 간의 싸움이었다.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와 통합하려는 정치조직 신페인을 인정하지 않았고 준군사조직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을 테러단체로 규정하여 탄압했다. 30년 동안 3,6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만명이 다쳤다.

결국 1998년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서로를 불구대천의 적으로 보고 대결했던 민주연합당(DUP)과 같은 친영파 정당과 신페인이 공동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이 과정을 적극 중재했고 EU는 평화보장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EU는 화해를 적극 지지했고 아일랜드와 영국 각료들은 EU의 외무와 경제 등 거의 모든 회의에서 긴밀하게 접촉했다. 평화협정에는 “전반적인 영국과 EU 관계 속에서 이 지역의 평화를 지킨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는 영국, 최소한 북아일랜드는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브렉시트는 이를 번복하려 한다.

메이 총리는 승부수로 감행했던 지난 6월의 조기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북아일랜드의 DUP와 비공식 연정을 구성했다. DUP는 대표적인 친영파 정당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지만 북아일랜드는 56%가 EU 잔류에 투표했다. 주로 아일랜드계가 집중 거주하는 지역에서 EU 잔류가 높게 나왔다. DUP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어떠한 규정 차이도 없다”는 합의 초안을 거부했다. 브렉시트 후에도 북아일랜드가 EU 단일시장에 잔류한다는 의미가 너무 명확해 친영파인 DUP는 이 규정을 수용할 수 없었다.

국경 통제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의 완전한 규정일치를 이루려면 영국이 단일시장에 잔류하는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가 계속 EU 회원국이기에 이 방법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 영국은 아직까지 탈퇴 후 EU와 무슨 관계를 원하는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집권 보수당이 이 문제를 두고 사실상 내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평화협정의 영국 수석대표였던 조너선 파월은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메이 총리가 이 문제를 봉합했지만 계속해서 국경 문제가 난제로 재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500㎞ 국경에 설치됐던 300여 개 정도의 초소. 이제는 역사가 되었지만 브렉시트는 이를 다시 불러들이려 한다. 민족주의의 본고장이었지만 과도한 민족주의 때문에 두 번의 큰 참화를 겪은 유럽은 통합의 과정 속에서 주권을 공유하여 민족주의라는 망령을 호리병 속에 밀봉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2010년 그리스 경제위기부터 시작된 경기침체, 이를 기회로 활용해 대두한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 여기에 브렉시트까지 겹쳐 망령이 다시 깨어났다. 이래저래 내년부터 시작될 브렉시트 2단계 협상은 험로가 예상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ㆍ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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