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시태그(#)는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원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게 하는 기능이다. 지난 2007년 8월 구글 개발자 크리스 메시나가 처음 제안했다. 해시태그는 대중화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는 하루 평균 1억2,000만번(트위터 기준) 사용될 만큼 SNS 필수 기능이 됐다.
검색 기능에 국한됐던 해시태그는 올해 성격이 다소 변했다. 작은 목소리를 큰 함성으로 바꾸는 사회적 역할까지 맡게 된 것.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인 ‘미투’ 해시태그가 이런 흐름에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미투 해시태그는 지난 10월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의혹이 발단이 됐다. 의혹이 확산되자 여기저기서 “나도 웨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해시태그에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를 붙인 뒤 웨인스타인의 과거 성추행을 고발했다.
미투 해시태그는 웨인스타인에게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이들의 고백을 지지하거나 다른 남성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받은 사실을 고발할 때도 쓰였다. 현재까지 미투 해시태그는 최소 85개국에서 수백만 번 넘게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기를 끈 해시태그 9개를 통해 올해 SNS 세상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봤다.
#다스는_누구겁니까

포털 사이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자동 완성 문구로 ‘이명박 다스’가 나온다. 사람들이 너무 자주 이 문구를 검색하다 보니 검색 인공지능(AI)이 알아서 검색어로 추천해주는 것이다.
올해 이 전 대통령에게 다스는 악몽 같은 존재였다. 다스(DAS)는 연 매출 1조의 중견 자동차 시트 제조업체다. 이 전 대통령 친형 상은씨가 대표이사로 있다. 다스는 2000년대 초반 국내 주식시장을 뒤흔든 ‘BBK 주가조작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BBK 사건의 주요 피해자였다. 다스는 당시 BBK에 190억을 투자했다.
BBK는 이 전 대통령이 설립을 사실상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 대학 강의에서 “BBK를 설립하고”라고 말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즉 BBK와 다스는 전부 이 전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다. 친형이 대표인 다스는 BBK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다. BBK는 다스로부터 가장 많은 범죄 수익을 챙겼다. 그런데 BBK는 이 전 대통령이 세웠다고 한다. 모든 논란의 중심엔 반드시 이 전 대통령이 서 있는 것이다.
BBK는 2007년 대선 당시 정치권에서 큰 쟁점이 됐다. 국회 동의를 얻어 특검을 진행한 결과, 이 전 대통령과 BBK는 무관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다스는 그때도, 지금도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오리무중 상태. 특히 지난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청산’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다스의 실 소유주를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 시작했다. SNS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춰 ‘다스는_누구겁니까’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다.
#촛불집회

지난 2016년 10월, 경찰 추산 1만명으로 시작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집회는 이듬해 3월까지 1,600만 넘는 국민을 광화문광장으로 이끌어내며 헌정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란 결말로 마무리됐다.
촛불의 열기는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에서도 뜨거웠다. 사정상 집회에 참여하지 못 한 사람들은 ‘촛불집회’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반대로 참가자들을 집회 영상, 사진 등을 올려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고마워요_문재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맞은 지난 8월 17일. SNS는 별안간 ‘고마워요_문재인’이라는 해시태그로 뒤덮였다. 주요 포털 사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고마워요_문재인’이라는 문구가 1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취임 100일 기념 깜짝 행사를 벌인 것이다. 여느 연예인 팬들이 사이에서나 볼법한 풍경이었다.
지지자들은 문 대통령 외에 주변 사람들도 챙겼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생일이었던 지난 11월 15일에는 ‘사랑해요_김정숙’이라는 문구가 SNS와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헌재소장 임명안이 국회 통과에 실패한 지난 10월에는 ‘힘내세요 김이수’라는 문구가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지난 11월 2일, 여성 인권단체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한 남성이 침입했다. 3개월 전 집을 나간 아내와 자녀를 보겠다며 무작정 들이닥친 것이다. 남성은 “자녀를 보기 전까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남성의 얼굴을 보기는커녕 찾아온 것만으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호시설 관계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남성이 가해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경찰은 출동 초반 남성이 시설에 침입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뒤늦게 이를 인지하고 주거침입 혐의로 검거했다. 여성의전화는 공식 트위터에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문구와 해시태그를 올리며 경찰의 당시 태도를 비판했다. 해시태그는 여성의전화가 트위터에 올린 지 1주일 만에 관련 게시물 20만 건을 돌파하며 화제가 됐다.
#멍스타그램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를 반영하는 듯 강아지들의 인기는 2017년에도 멈추지 않았다. ‘#멍스타그램’은 강아지가 짖는 소리(멍)와 인스타그램을 합쳐 만들어진 해시태그다. 올해 달라진 게 있다면 ‘#멍스타그램’을 걸고 반려동물 관련 운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들은 SNS에 유기 동물이 처한 처지를 알리거나 입양 안내를 한다. 배우 윤승아, 전혜빈등 스타들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또 다른 특징은 강아지 관련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드러낼 때 자주 쓰인 것이다. 지난 10월 한 유명 한식당 대표가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의 반려견에게 물린 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강아지에게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견주들은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데 ‘#멍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자주 활용했다.
#육아스타그램
‘#멍스타그램’과 함께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끈 해시태그가 바로 ‘#육아스타그램’이다. 육아스타그램은 단순히 SNS에 아이 얼굴을 올리는 행동을 넘어서 관련 산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몇몇 업체는 ‘#육아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이용해 활발한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육아스타그램’은 아이와 부모가 알면 좋을 훈육법을 알릴 때도 자주 쓰인다.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초보 부모들에게 ‘선생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1살 배기 아이를 두고 있다는 박혜진(31)씨는 “해시태그만 검색하면 많은 육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저도 도움을 받은 만큼 같은 해시태그를 사용해 유익한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페미니스트다
지난해부터 SNS에서 불었던 ‘페미니스트 선언’은 올해 더욱 확대된 양상이다. 특히 트위터를 중심으로 심심치 않게 ‘#나는페미니스트다’라는 해시태그를 볼 수 있게 됐다. 다만 올해 변화된 점이 있다면 페미니즘과 동 떨어진 존재라고 평가 받았던 남성들까지 정체를 숨기지 않고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나는페미니스트다’라는 해시태그를 쓰며 자주 글을 올렸다는 A모씨는 “해시태그로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한 움직임은 긍정적”이라며 “페미니즘을 몰랐던 사람들이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
지난 2013년 데뷔한 아이돌 방탄소년단은 올해 국내를 대표하는 아이돌로 꼽히기 손색이 없다. 미국과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과 ‘빌보드200’ 동시 진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수직상승하며 SNS에서는 ‘방탄소년단’ 해시태그의 사용 빈도도 부쩍 늘어났다. 트위터가 지난 8월 발표한 해시태그 관련 자료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은 올해 한국 관련 가장 많이 사용된 해시태그였다.

#구탱이형 #종현_끝까지기억할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죽음은 사람들을 슬픔에 빠뜨렸다. 배우 김주혁은 지난 10월 서울 삼성동에서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룹 샤이니 종현은 지난 18일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사랑했던 스타의 죽음을 해시태그로 추모했다. ‘#구탱이형’은 김주혁을 부르던 애정 섞인 별명이었다. 샤이니 팬들은 종현을 떠나 보내며 ‘#종현_끝까지기억할게’라는 해시태그를 남겼다. 종현을 잊지 않겠다는 팬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해시태그였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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