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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요양원 어머니와 7남매 이야기

입력
2017.12.21 17: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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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끼며 사느라 놓치고 흘려 보내는 게 참 많다. 며칠 전 오후에 뜬금없이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그런 현실을 새삼 일깨웠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된 통화의 주인공은 얼추 30년 전 서울 신촌에서 하숙 할 때 잠시 나와 같은 집에서 지냈던 나 모라고 자신을 밝혔다. 얼굴은 가물거렸지만, 담담한 어조만으로도 그 사람의 정다웠던 이미지가 오롯이 되살아 났다. 통화 한 번으로 기억의 창고 한 구석에 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던 인연의 등불이 다시 한 번 환하게 밝아졌다.

▦ 지난날로부터 걸려 온 전화가 일깨운 게 또 있다. 어머니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던 나씨는 어머님을 지난 2015년 5월 요양원에 모시게 됐다고 했다. 7남매여서 큰형님이나 작은형님도 직접 모실 의향이 없지 않았으나, 어머님이 나주 고향집이 좋다며 홀로 거기 머무셨다고 했다. 그러나 연세가 아흔에 가까워지면서 치매 증상이 나타났고, 그럼에도 고향집을 고집하시는 어머님과 가까스로 타협을 본 게 고향 인근의 경증 치매환자 요양원이었다는 것이다.

▦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날, 형제들은 서울에 다가올수록 말이 없어졌단다. 나씨의 뇌리엔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옛날 고려장 얘기가 소재인 장사익의 노래(꽃구경)가 맴돌았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씨는 하루 걸러, 이틀 걸러 한 번씩 어머니와 통화하고, 그 내용을 휴대폰 단체 문자로 형제들과 공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문자로 소통하며 7남매가 지난 6월까지 2년여간 어머니를 돌보며 나눈 마음의 기록을 모아 최근 ‘어머니가 트시다’(나병승 지음, 컬처플러스 발행)라는 책으로 엮어 냈다.

▦ 책은 짧은 문자 메시지의 집합일 뿐이지만,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신 착한 7남매의 애틋하고 송구한 마음이 곳곳에 담담하게 감돈다. 의연하게 요양원 생활을 감당하다가도 자식들과 일상이 그리워 애달프신 그 어머니의 모습도 주변에 한 집 건너 비슷한 우리 어머니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씨의 이야기는 지금도 고향에 홀로 계시는 내 어머니의 실존과, 전화 한 통일지라도 못난 자식의 관심만이 어머니의 나날을 생기로 채워드리는 묘약임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한 해가 저문다. 어머니를 봬야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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