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 변천사
강릉 아이스 아레나
진행 인력, 장비, 물자 총괄
웜업룸, 라운지,사무실까지
설계 과정 일일이 의견 개진
찜질용 얼음 비치 했더니
테스트 이벤트 때 폭발적 반응

“제 손으로 직접 일군 강릉 아이스 아레나, 세계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서 올림픽 일꾼으로 변신한 변천사(30) 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은 올림픽이 펼쳐질 무대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18일 강원 평창군에 위치한 조직위 사무소에서 본보와 만난 그는 빙상종목이 펼쳐질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대한 질문에 “당연히 최고”라고 자신했다.

신목고 재학 중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변천사는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2번이나 선두를 탈환하며 한국의 쇼트트랙 여자 계주 4연패 신화를 썼다. 당시 4바퀴를 남기고 3위로 밀린 상황에서 주자로 나서 폭풍의 질주를 펼친 뒤 마지막 주자 진선유(29)를 힘껏 미는 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국민들 뇌리에 진하게 남아있다.

그랬던 올림픽 스타가 이제는 스케이트화를 벗고 올림픽 일꾼이 돼 얼음판을 누비고 있다. 그는 2013년 4월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을 채용하는 공고를 보고 가슴이 벅차 올랐다고 한다. “선수생활을 할 땐 은퇴 후에 뭘 해야 할까 깊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어요. 2011년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 많은 고민을 했죠.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역 은퇴를 한 많은 선수들이 그랬듯, 변천사 역시 지도자의 길을 잠시 생각했었다. “대전과 과천에서 유소년들을 대상으로 레슨도 했었어요. 그런데 크게 흥미 있진 않더라고요. 목표를 하나씩 두고 그걸 이루면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은데, 코치를 하면 내년에도 코치, 그 다음에도 코치, 5년 뒤에도 코치, 늘 똑같은 생활일 것이 뻔하잖아요. 흥미가 없었어요.”

고민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던 2011년 7월, 낭보가 날아들었다. 2018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결정된 것이다. “평창 개최가 확정되고 나서 어떤 직책이 됐든 저기 가서 대회를 준비하는 일원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장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2013년 종목담당관 채용 공고를 보고는 과감하게 도전해 여기까지 왔고요.”

종목 담당관은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종목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총괄 한다. 경기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교육을 하는 것은 물론 각종 장비와 물자 도입까지 책임진다. 쇼트트랙 팀원 5명과 경기 파트 인력 250명으로 구성된 거대한 배의 선장으로서 수 많은 인력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 끝까지 끌고 가는 쉽지 않은 일까지 맡았다.
“처음 담당관으로 채용됐을 땐 강릉 일대가 허허벌판이었어요. 경기장 설계가 진행되고 있었죠. 물론 저 혼자서 정한 건 아니지만, 피겨 종목담당관이나 국제연맹과 협의해 드레싱룸 크기부터 라운지, 웜업룸의 크기와 위치까지 다 정했어요. 심지어 사무실 책상과 의자 개수까지도요. 애정이 클 수 밖에 없겠죠?”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종목 담당관을 선발한 것은 평창올림픽 대회의 수준을 한껏 높였다. 변천사는 선수활동 경험을 최대한 활용했다. 얼음이 만들어지고 나선 직접 스케이트를 타 보며 빙질을 체크했고, 선수들에게 필요한 장비들을 콕 집어내 준비했다. “선수들은 늘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사니까 한 경기 뛰고 나오면 즉시 얼음찜질이 필요한 경우 많은데 대부분의 대회에서는 찜질 준비를 해놓지 않아요. 선수시절 그런 걸 항시 구비를 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규정에 나와 있는 의무사항이 아니니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런데 경기력 향상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장비라고 봤죠.”
변천사는 지난해 12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때 얼음 슬러시 기계를 시범적으로 배치했는데, 선수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테스트 이벤트 땐 시간이 부족해 기계만 배치했는데도, 선수들이 그 기계에서 슬러시 된 얼음을 가져가는걸 보고 ‘하길 잘 했구나’ 생각했어요. 코치와 선수들도 너무 좋다 이야기 해주니 힘이 났죠. 올림픽 땐 조금 더 신경 써서 저희가 직접 얼음을 비닐 팩에다가 하나씩 다 포장해서 냉동고에 넣어놓을 계획입니다.”

쉼 없이 달려온 올림픽 준비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금은 여유를 되찾았지만, 눈코 뜰새 없이 바빴던 테스트 이벤트 시절 구입한 ‘아재템’ 블루투스 이어폰은 아직도 그의 목에 걸려 있다. “개막일이 점차 다가오면서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두려워요. 특히 쇼트트랙은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종목이잖아요. 막중한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올림픽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밤잠을 설친다는 변천사. 그가 꿈꾸는 평창 올림픽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종목 담당관이 같은 마음이겠지만, 최고의 경기력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게 최우선 목표예요. 선수들과 국제연맹으로부터 아무런 불만접수가 없이 원활히 진행되게 만들어야죠. 특히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나서는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올림픽 메달을 땄을 때도 안 울었는데 말이죠”.
평창=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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