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수도 반대 유엔 결의안
찬성 국가에 재정지원 중단 엄포
“수억달러 받고선 우리에게 반대”
유엔 총회의 예루살렘 관련 결의안 투표를 하루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가세해 대놓고 협박에 나섰다.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데 반대하는 결의안에 찬성투표를 하는 회원국에 재정 지원 중단까지 시사하며 엄포를 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니키(니키 헤일리 유엔대사)가 어제 유엔에서 우리 돈을 받는 나라들에 보낸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라며 “우리에게서 수천만, 심지어 수억 달러를 받고선 우리를 반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투표를 지켜보겠다”며 “우리한테 반대투표를 해 봐라. 그럼 우리는 돈을 많이 아낄 수 있다. 상관 안 한다”고 말했다. 전날 헤일리 대사가 각국에 보낸 서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표결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에 기분이 상할 것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고 말한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 재정 지원 중단까지 언급하며 쐐기를 박은 것이다. 헤일리 대사는 트위터에 “이름을 적겠다”는 표현까지도 사용했다.
하지만 이집트 등 일부 국가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법률적 의무 사항이어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선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해외 원조를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엄포”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교장관은 이날 터키 외교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이 각국의 주권적 결정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21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나라가 양심에 따라 정의를 위해 투표할지 보게 될 것”이라며 말했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도 “지조도 없고, 품위도 없는 나라들이 그런 압력에 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미국의 압박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유엔대표부는 “헤일리 대사는 미국과 우정을 유지하는 것을 걱정하는 대사들로부터 수많은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엔 193개 회원국은 중동국들의 요청에 따라 21일 긴급회의를 열어 미국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을 반대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친다. 안건은 회원국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으면 채택된다. 결의안의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통과시 트럼프 정부는 국제사회의 맹렬한 비난을 눈으로 확인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앞서 18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는 15개 이사국 중 14개국이 찬성했지만,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 채택은 저지됐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