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후의 시간이지요. ‘다음에’는 당신과 나 사이에 만들어놓는 시공간이어서, 당신과 나보다 먼저 가 있는 당신과 나이지요.
택시를 타고 가는 중이었어요. 세상은 어둑해지는 저녁이었어요. 당신은 내게 다음에, 라고 하였지요. 다음에는 꼭, 이라고도 말하였지요. 하필 백반집을 지나갈 때였지요. 기교 없는 흰 밥과 끼얹으면 밥이 술술 넘어가는 청국장. 화려한 반찬이 없어도 마주앉은 당신이 있어 숟가락과 입과 웃음이 동그랗게 일치할 순간이 들어 있는. 그래서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나를 먹이고 달랬지”요.
다음에는 꼭. 이런 기약 속에는 미안함이 들어 있지요. 못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꼭 지키고 싶다는 간절함이 들어 있기도 하지요. 당신과 나의 다음은 오지 않고 있어도, 다음에는 꼭, 이라는 말을 놓고 간 당신의 심정을 알기도 하겠기에, 나는 엉거주춤 낮고 낮은 밥상을 차리는 반복을 하지요. 내가 헤매고 있는 곳은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길이지요.
어긋났다고 해도, 다음에는 꼭, 이라고 말하기로 해요. 오늘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음에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잖아요. 오늘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나는 순간은 다음에는 꼭 만나고 싶은 순간이잖아요. 어쩌면 가장 멋진 인간의 발명인 한 해. 그 끝자락에서, 다음에, 다음에는 꼭 이라고 걸어두기로 해요. 트리의 꼭대기에서 빛나는, 찔리는 사방을 가지고 있어 별이라고 불리는 그것처럼. 당신 애썼어요. 전하지 못한 한 마디처럼.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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