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톈안먼(天安門) 사태 희생자 수가 1만명에 육박한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홍콩01과 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두 매체는 영국 정부가 지난달 기밀 해제한 톈안먼 사건 관련 외교문건을 인용, 당시 사정에 정통한 중국 국무원 고위층 인사가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학생과 시민을 제27군이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학생, 민간인, 군인을 합쳐서 이 같은 사망자를 낸 것으로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들 사망자는 대부분 총상을 입고 목숨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국가문서국이 비밀 분류를 해제한 톈안먼 사건에 관한 외교문건은 수천 쪽에 달하며 주중 영국대사관, 홍콩과 영국 정부, 영국 정보원 등이 기록 작성한 것으로 1989년 6월4일 유혈진압 전후의 중국 정세 평가와 군사배치 등을 망라해 다루고 있다. 텐안먼 사태 희생자 수에 관한 정보는 당시 주중 영국대사 앨런 이완 도널드 경이 중국 국무원 당국자로부터 입수한 것이라고 한다. 도널드 대사는 본부에 보낸 전문에서 자신에 정보를 제공한 중국 고위층 인사가 이전에 건넨 정보들도 나중에 정확한 사실로 판명 났다며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 국무원 회의는 구성원이 총리와 부총리, 국무위원을 포함해 14명뿐이었는데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에 제보자의 신원에 관한 문건상 부분은 검게 칠해져 지금까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도널드 대사는 제27군 병력이 톈안먼 광장에 밀고 들어와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한 다음날인 6월5일 런던 본부에 타전한 전문을 통해 진압 과정에서 숨진 희생자 수 등을 보고했다. 기밀문건에 따르면 중국 고위 인사는 민주화 시위를 무자비하게 압살한 부대는 산시(山西)성에서 출동한 제27군으로 병력의 60%가 저학력자로 이뤄졌다. 문건은 제27군의 장병이 애초 베이징에 진입해 훈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유혈진압 작전 10일 전부터 신문을 일절 보지 못하게 했다고 소개했다. 무력진압 작전은 실제로 6월3일 저녁 시작했으며 원래 계획으로는 4단계로 진행할 방침이었다. 그런데 3단계 임무가 실패로 끝나면서 제27군 장갑차가 톈안먼 광장에 도착, 바로 발포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비무장 군인과 학생들이 집단으로 사살당했다. 당시 1,000명이 톈안먼 광장을 떠나라는 허락을 받았으나 주변 도로변에 설치된 기관총 난사를 받았고 뒤쫓아 온 장갑차의 공격을 당했다. 문건은 국무원이 민간인 사망자를 최소한 1만명으로 추정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도널드 대사는 6월22일 전문에서 사망자 수를 2,700~3,400명으로 추산하면서 시신 전부를 병원에 안치할 수 없어 지하보도에 쌓아놓은 것으로 보고했다. 톈안먼 사건의 희생자에 관해선 중국홍십자회는 2,500~3,000명으로 잡고 있다. 백악관 기밀문서는 중국 내부문건을 인용해 총 사망자 수를 1만454명으로 집계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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