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은폐한 것이 언론의 추적으로 들통나면서 보스턴 대주교에서 불명예 사임한 버나드 로 추기경이 20일(현지시간) 숨졌다. 86세.
로마 교황청은 이날 “오랜 질병에 시달렸던 로 추기경이 오늘 아침 숨졌다”는 짧은 소식을 전했다. 그는 당뇨병 합병증 등으로 투병해 오다 이날 이탈리아 로마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로 추기경은 1984년부터 2002년까지 보스턴대교구의 대주교로 재임할 당시 관할 사제들이 무려 30여년 간 아동을 성추행한 사실을 알고도 수 년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다. 특히 범인 중 하나인 성직자 존 지오간은 수차례에 걸쳐 아동을 성추행했지만 그 때마다 여러 교구를 옮겨 다니면서 범행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 추기경 자신은 추문이 터진 후 대주교직을 사임했지만 처벌을 받지 않았고, 2004년 로마로 이주해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수석 사제를 맡는 등 고위 성직자로서는 계속 활동해 논란을 일으켰다. 피해자 단체인 ‘사제 학대 생존자 네트워크’는 로 추기경의 사망 후 성명에서 “생존자들은 로의 성범죄 은폐 사실이 드러나면서 첫 배신을 당했고 이후 로마에서 진급하는 모습을 보며 두 번째로 배신을 당했다”라며 “보스턴 성학대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데 왜 그의 죽음이 기념돼야 하느냐”라 물었다.
보스턴 성직자들의 성학대와 로 추기경의 은폐 사실을 탐사보도한 지역일간 보스턴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활동은 2015년 영화 ‘스포트라이트’로 재조명됐으며 이 영화는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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