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이 미래다]강사ㆍ수강생 수급이 엇박자… 지역 특성 고려해야 성공
중앙정부 양적 성장정책 실시로
문화예술교육 비약적 성장했지만
일방적인 설계 프로그램 많아
지역 현실과 괴리되며 부작용
강사 선발ㆍ예산 운영 등 권한
지역센터에 주고 자립 시켜야
지난 15일 오후 3시 인천 화도진도서관. 단편영화 ‘약혼사진’ 상영이 끝나자 남자주인공인 이광언 할아버지가 무대로 나와 상기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는다. “나이가 들어서 저런 걸 찍어본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얼마 전까지도 내가 배우 노릇 해본다는 걸 꿈에도 상상 못했는데!” 이씨는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인천지역 예술가들에게 인천에 관한 옛 기억을 들려주고 그 사연을 연극, 영화로 함께 만들었다. 정부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인천이야기’를 통해 올해 만든 작품은 한 시간짜리 연극 1편, 6~7분 내외 단편영화 4편에 이른다. 작품을 제작한 신운섭 작업장 ‘봄’ 대표와 영화를 연출한 이란희 감독은 지난 8년간 ‘실버극단 학산’을 운영하며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왔다.
‘봄’의 작품들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예술교육에 반영한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올해는 인천 남구 주안노인문화센터 통해 참가 어르신을 모집하며 장소도 한꺼번에 해결했는데, 주소를 다른 구로 등록한 어르신이 참가할 때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다. 총 예산 2,000만원은 제작비로 빠듯한데다, 제출해야 할 세부항목이 너무 촘촘해 결국 ‘주 강사’로 등록된 이란희 감독이 대본 5편을 무료로 직접 썼다. 신 대표는 “인천의 모든 노인복지관을 다 돌아다니며 추가 작업을 하는 게 목표지만 내년도 지원사업에 다시 신청해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 제정 후, 국내 문화예술 교육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바탕에는 ‘중앙정부 주도’의 양적 성장정책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005년 기준 89억원에 불과했던 문화예술교육진흥원(진흥원) 예산이 2017년 1,325억여원으로 확대되었는데, 이 정도 예산 증가는 중앙정부의 적극적 주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참여한 예술강사 수는 2005년 1,861명에서 2016년 5,849명, 수혜학교와 시설은 2005년 3,220개에서 2016년 1만1,593개로 확대됐다.
문제는 중앙정부 주도의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각종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재근 사단법인 한국문화의집협회 이사장은 “지역마다 인구, 경제력, 문화적 특성이 전부 다른데 중앙이 설계한 방안을 ‘탑다운’방식으로 수용하다 보니 현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경기 군포, 안산, 안양 등 해외 이주민이 많은 지역은 다문화 가정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한 데도 다른 지역과 동일한 프로그램을 적용하다 보니 일부는 강사가 모자라고, 일부는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한 촌극이 벌어진다는 설명이다.
중앙정부 정책에 맞춰 교육 수요가 창출되는 ‘공급자 중심’의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이다. 2000년 국악 분야 ‘강사풀제’ 도입으로 시작된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으로 “‘전국 모든 학교에 예술강사 1명씩’ 같은 정량적 목표를 가지고”(정연희 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진흥본부장) 추진되면서 각종 파열음을 가져 왔다. 2017년 기준 학교 예술강사 5,202명, 복지기관 예술강사 500명 중 학교 강사 전원이 지역문화예술교육센터(지역센터)와 근로계약을 맺은 간접고용형태로 고용돼있다. 2013년 결성된 전국예술강사 노조를 중심으로 강사 일부가 진흥원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서울 경기 등 주요 지역센터가 2015년부터 예술강사 지원사업 포기 의사를 밝혀 민간위탁기관에서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실정이다. 차재근 이사장은 “중앙정부가 예술강사 선발권, 배치권한을 전부 갖는데, 지역센터가 고용주체가 돼야 하는 실정”이라며 “강사 선발권, 운영 등 정책 설계 권한을 지역센터에 주고, 직접 고용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문화예술교육은 각 지역에 ‘지역센터’를 지정해 운영된다. 지역센터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재원으로 쓰면서 조직운영은 문화재단 방침에, 사업운영은 위탁기관인 진흥원 지침에 구속돼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구조다. 특히 인건비 중 상당비율을 연 단위로 갱신되는 사업예산에서 충당해 고용 안정성이 극히 불안하다.
전문가들은 자립 가능한 지역센터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중앙정부는 정책수립, 예산확보, 정부 부처간 협의를 조절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산하 기관은 정책 연구와 개발, 사업 평가와 재원관리, 국가 단위의 교류 사업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서울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박형주 광주 청소년 삶디자인 센터장은 “지역센터가 예산 운영권을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지역 분권으로 가기 위한 자율적인 구조가 마련된다”며 “지역센터를 독립기구화해서 운영방식과 사업예산 분배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이런 전제를 두고 관련 법령인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을 개정하고 관계 기관 조직개편도 뒤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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