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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집단사고와 프레임 넘어서기

입력
2017.12.20 14: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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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역사와 정세를 입력해 놓은 슈퍼 인공지능(AI) 컴퓨터를 만든다면 외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프로그래밍 기술은 경제나 과학 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고 실제로 여러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합리적 의사결정은 개별 주체가 문제 인식에서부터 여러 대안을 검토해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게 전제다. 슈퍼 인공지능은 이러한 합리적 선택을 극대화한 방식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과학적 예측 기법이 일부 사용되고는 있으나 아직 많은 정책결정자들은 기계가 만들어낸 예측에 전적인 동의를 하지 않는다.

실제 외교 정책에 있어서는 합리적 선택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있다. 외교의 주체는 일차적으로 사람들이다. 따라서 감정의 요소도 크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사람인 이상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실수도 하게 마련이어서, 의사결정에는 제한된 합리성만 작용한다. 또한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반대되는 정보를 종종 차단시키는 인지 부조화 현상은 지속적 자기합리화를 시도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집단사고(groupthink)는 조직 구성원들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외부의 비판에 방어적 입장을 취하게 하는데, 이러한 동질성은 의사결정 과정을 신속하게 하지만 정보 교환의 부족이나 판단의 왜곡을 가져오기 쉽다. 1961년 미국 케네디 행정부의 쿠바 피그스만(Bay of Pigs) 침공의 실패는 동질적 성향을 가진 집단의 내부적 결정이 가져오는 오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집단사고는 실제로 많은 국가와 조직에서 발생되는 현상이다.

강한 응집력에 기반한 집단사고는 견고한 프레임을 낳고, 강력한 구심력으로 담론을 흡수해나간다. 중간 위치의 입장은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 하나로 무력화된다. 이러한 집단사고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보 수용의 편중성이다. 몇 겹의 필터로 걸러진 정보는 원하는 쪽으로 선택적으로 수용돼 확대 재생산된다. 또 프레임이 강할수록 필터도 두꺼워진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틸러슨 국무장관의 대북 대화제의가 큰 이슈가 되었다. 거의 모든 언론은 미국의 대화로의 선회를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느낀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전체적 입장과 외교적 도구의 활용에 있어서 지극히 현실주의적이었고, 귀 기울여야 할 다른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의 한미 무역관계와 에너지 수입에 대한 미사여구 없는 강경한 입장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듣고 싶었던 “대화”라는 한 마디에 나머지 메시지를 옆으로 밀어버렸는지 모른다. 비단 이번 발언뿐일까. 실제로 우리는 오랫동안 워싱턴에서, 북경에서, 동경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보를 여러 겹의 필터로 원하는 핵심어만을 걸러내는 프레임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전반적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프레임 속의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 낸 가상현실이기 십상이다.

정치적 대립구도 하에서 집단사고의 프레임을 넘어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정보 수용의 폭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인공지능이 각광을 받게 된 것도 빅테이터에 기반한 개방적 플랫폼으로 더 많은 정보의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발표한 신안보전략에서 힘과 실리에 기반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안보와 통상의 거센 파도가 곧 들이치게 된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안보ㆍ경제를 논의할 워싱턴의 상대방들은 산전수전 겪은 노련한 사업가 출신들이다. 협상과 실리에서 백전노장들이다. 협상에 서는 명분과 논리보다도, 상대방이 잠시 눈썹이 흔들리고 눈빛이 바뀌는 순간을 잡아내는 치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우리 역량도 작지 않다. 다만 그것을 최적의 선택으로 활용해야 한다. 최소한 국익이 걸린 외교에서만큼은 프레임 넘어서기가 필요하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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