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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굿즈 열풍] 나라가 만들면 촌스럽다고? 갖고 싶다 ‘NG’

입력
2017.12.20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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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공식 스토어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 위치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공식 스토어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1.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일은 몰라도, 평창 롱패딩 출시일은 안다. 사전 준비된 3만장이 완판됐다는 소식에 올림픽도 폐막한 줄 알았다는 반응까지 심심찮게 보인다. 이제, 평창 하면 롱패딩, 롱패딩 하면 평창이 연관검색어로 따라붙는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해발 700m 청정 지역 평창은 ‘롱패딩의 도시’로 거듭났다.

#2.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은 물건 좀 볼 줄 안다는 쇼핑족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다. 물론 갖고 싶은 보물이 널려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사다 꽃을 꽂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맞붙이면 입체 고려청자 모양이 되는 메모지 세트는 4,300원이면 손에 넣을 수 있다. 뮤지엄숍에 발을 딛기만 하면 된다. ‘지름신’을 불러내는 상품이 너무 많아, 그곳을 빈손으로 빠져 나오는 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던 최영 장군쯤 돼야 가능한 일이다.

지난 13일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을 방문한 관람객이 ‘별 헤는 밤’ 굿즈 시리즈를 살펴보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지난 13일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을 방문한 관람객이 ‘별 헤는 밤’ 굿즈 시리즈를 살펴보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내셔널 굿즈를 아시나요

나라 또는 국가기관이 만든 기념품은 조악하고 촌스럽다는 편견이 강했다. 사실 과거에는 좀 후지기도 했다. 대표 상품이라고 해봐야 하회탈과 효자손밖에 없었다. 옷과 소품에는 각 기관명과 행사명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어서 밖에서 입거나 사용하기 창피했다. 그나마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는 귀엽기라도 했지, 2002 한일월드컵 때 전국을 빨갛게 물들였던 붉은 악마 티셔츠는 월드컵이 끝나자 집에서 입기도 꺼려졌다.

하지만 ‘굿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요즘 기념품은 다르다. 나라가 만들어서 더 고급스럽다. 청와대 기념품 ‘이니 굿즈’가 희귀템이라면, 평창 굿즈는 베스트셀러,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는 스테디셀러다. 나라가 품질 보증하는 이른바 ‘내셔널 굿즈’는 최근에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다.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해 혹한에 밤을 새워 기다린 열혈 소비자들이 이미 몸소 증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각종 굿즈 구매 인증샷과 후기가 줄을 잇는다. 성조기와 유니언잭으로 디자인한 옷은 입어도 태극기가 새겨져 있으면 트레이닝복도 안 입는 이들에게 ‘내셔널 굿즈’의 인기는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가져다 준다.

롱패딩 열풍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굿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복 수호랑 인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컬링 스톤 쿠션, 스노보드 스노볼, 방한 머플러, 핑거 하트 장갑, 방한 비니. 평창조직위 제공
롱패딩 열풍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굿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복 수호랑 인형(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컬링 스톤 쿠션, 스노보드 스노볼, 방한 머플러, 핑거 하트 장갑, 방한 비니. 평창조직위 제공
1960년 미국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에 나간 첫 번째 여자 국가대표 선수로 기록된 김경회 여사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스토어를 방문해 선물을 구입했다. 최지이 인턴기자
1960년 미국 스쿼밸리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에 나간 첫 번째 여자 국가대표 선수로 기록된 김경회 여사도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스토어를 방문해 선물을 구입했다. 최지이 인턴기자

평창 굿즈 열풍은 계속된다

롱패딩으로 촉발된 평창 굿즈의 인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14일 찾아간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평창 공식 스토어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북적거렸다. 가족 고객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선물용으로 인기다. 올림피언에게는 특별한 추억까지 선사한다. 1960년 미국 스쿼벨리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해, 우리나라에서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첫 번째 여성 국가대표 선수로 기록된 김경회 여사의 양손에도 선물보따리가 가득 들려 있었다. 김경회 여사는 “이번에 성화 봉송 주자로 참여하게 된 걸 기념해 미국에 있는 손자 손녀에게 줄 선물을 사러 왔다”며 “의미도 있고 디자인도 예뻐서 아주 마음에 든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손주들을 떠올리니 기분 좋다”고 웃음을 지었다.

평창조직위 라이선싱팀 김소현 매니저는 “롱패딩 열풍을 기점으로 평창 굿즈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온ㆍ오프라인 매장 방문자수가 3~4배 증가했고 매출도 급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창 굿즈 열풍은 스니커즈로 이어지고 있다. 5만원대 저렴한 가격 덕분에 인기다. 예약 물량만 20만켤레다. 평창조직위는 ‘핑거 하트 장갑’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김소현 매니저는 “역대 동계 올림픽 최고 인기 아이템인 장갑에 트렌디한 한국 문화인 손가락 하트를 접목시켜 만들었다”며 “방한은 물론 스마트폰 터치 등 실용적인 측면도 갖추었고 응원을 하기에도 더 없이 좋은 아이템”이라고 소개했다. 올림픽 콘텐츠를 기발하게 표현한 컬링 스톤 쿠션, 하키 스틱 쿠션도 평창조직위가 자랑하는 간판 상품이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 인형은 벌써 10만개가 팔렸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굿즈는 ‘국립 굿즈’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초충도 파우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려청자 메모지, 초충도 에코백, 가례도감 의궤 우산, 별 헤는 밤 유리컵, 쇠철강 연필세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굿즈는 ‘국립 굿즈’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초충도 파우치(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려청자 메모지, 초충도 에코백, 가례도감 의궤 우산, 별 헤는 밤 유리컵, 쇠철강 연필세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외국인 관광객이 13일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외국인 관광객이 13일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지이 인턴기자

우리는 박물관에 쇼핑하러 간다

‘국립 굿즈’ 또는 ‘국중 굿즈’라 불리는 국립중앙박물관 굿즈는 이미 수집가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한 굿즈계의 숨은 강자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과 회화 등을 모티브로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아이템들을 선보여 인기를 얻고 있다. 문구류, 생활소품, 액세서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방영에 맞춰 신사임당의 초충도 시리즈를 선보였고, 광복 70주년 기념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리즈, 외규장각 의궤 반환 기념 의궤 시리즈 등도 제작했다. 특별전시에 발맞춰 상품 기획도 한다. 올해 ‘쇠, 철, 강-철의 문화사’ 특별전과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특별전 관련 상품을 새로 선보였고, 19일 개막한 ‘예르미타시박물관’ 특별전과 내년 평창올림픽을 기념한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특별전에도 신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초충도 파우치와 열쇠고리, ‘별 헤는 밤’ 유리컵, 의궤 우산 등은 종종 품절돼 대란을 부른다.

굿즈만 사러 박물관에 오는 사람도 많다. 김지은씨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친구를 위해 ‘별 헤는 밤’ 유리컵과 티백 세트를 샀다. 김지은씨는 “국중 굿즈가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SNS 게시물을 살펴서 미리 상품을 골랐다”며 “너무 예쁜 상품이 많아서 다음에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또 사러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독일인 사업가 우베 괴츨씨는 “한국에 출장을 왔다가 가족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연와 목걸이와 보조 배터리를 샀다”며 “예전에도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진 접시를 사갔는데 가족들이 아주 좋아했다”고 웃었다. 물론, 취재하러 갔던 기자도 카드를 긁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도 껑충 뛰었다. 오프라인 매출은 올해 40억원 규모로, 10년 사이 2배 성장했고, 온라인 매출도 사이트 운영 초기인 2009년에는 연매출 2,000만원대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4억원에 이른다. 올해 역시 전년 대비 151% 수직 성장했다. 문현상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문화상품팀장은 “고품질과 실용성은 물론, 그 안에 문화ㆍ역사적 의미까지 담고 있어 20~30대 고객들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공식 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머그컵. 최지이 인턴기자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공식 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머그컵. 최지이 인턴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판매하는 ‘오묘한 녀석들 만들기’. ‘오묘한 녀석들’ 시리즈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 노니는 다섯 마리 고양이와 두 마리 까치를 묘사한 작품인 ‘유하묘도’를 종이인형으로 재탄생시킨 상품이다. 최지이 인턴기자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에서 판매하는 ‘오묘한 녀석들 만들기’. ‘오묘한 녀석들’ 시리즈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 노니는 다섯 마리 고양이와 두 마리 까치를 묘사한 작품인 ‘유하묘도’를 종이인형으로 재탄생시킨 상품이다. 최지이 인턴기자

우리는 개념 소비를 한다

막상 사고 보면 쓸모가 없어 ‘예쁜 쓰레기’라고도 불렸던 굿즈가 폭넓은 인기를 얻게 된 데는 상품 자체의 품질이 좋아지고 실용성과 디자인이 뛰어난 이유가 크지만,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며 심리적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와, 소비 행위로 상품에 담긴 철학과 의미를 알리는 ‘미닝 아웃(Meaning Out)’이 굿즈 열풍 현상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은 실생활과 밀접한 정보에 깊이 몰입하는 성향을 보인다”며 “평창 굿즈와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의 경우 올림픽을 기념하거나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알리는 의미까지 더해져 큰 반향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수익금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기부되는 상품이나 유기견을 돕는 상품 등의 인기에서도 보듯 젊은 세대의 ‘개념 소비’ 현상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 SNS에서 구매 후기를 공유하는 현상은 일종의 놀이문화로 소비자들을 끈끈하게 묶는다.

아이돌 굿즈,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굿즈, 라인 캐릭터 굿즈처럼 굿즈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고리타분할 것만 같은 내셔널 굿즈에 대한 거리감도 좁혀졌다. 문화 산업 전반에서 굿즈 마케팅도 활발하다. 이향은 교수는 “굿즈 열풍의 근간에는 각박한 사회에서 겪는 헛헛한 마음을 가시적인 물질로 보상받고 그 순간의 의미와 기억을 투사하려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짚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스마트폰 거치대. 최지이 인턴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스마트폰 거치대. 최지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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