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요원 없었다면 업체 책임
출발ㆍ도착지점 배치 의무 첫 확인
눈썰매장 언덕 아래 넘어져있다가 뒤이어 썰매를 타고 내려온 사람과 충돌해 다쳤다면 눈썰매장의 책임은 없는 걸까.
송모(9)군은 지난 겨울만 생각하면 “다시는 눈썰매장에 가고 싶지 않다”고 눈을 질끈 감는다. 혼자 썰매를 타고 내려가던 송군은 점차 가속이 붙자 중심을 잃고 도착지점에 넘어지고 말았다. 옷에 묻은 눈을 털며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려는 찰나, 뒤이어 내려오던 오모(15)양이 방향을 바꾸지 못해 무릎으로 송군 얼굴을 세게 쳤다. 송군의 아랫니 1개는 빠지고 바로 옆 치아는 부러졌다. 치과에서는 “영구치가 빠졌지만 성장기인 지금은 임플란트를 할 수 없고 10년 뒤에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송군 부모는 도착지점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고 다음 사람을 출발시킨 눈썰매장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눈썰매장은 상해 배상은 해줄 수 없다고 맞섰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송군을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에 각 1명 이상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한 체육시설의설치ㆍ이용에관한법률 제24조를 근거로 손해배상 책임을 주장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김미경 판사는 “눈썰매장은 사고 당시 도착지점에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아 계약상 고객에 대한 안전배려 의무 등을 위반했다”라며 눈썰매장 측에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송군이 앞으로 아랫니 없이 지내야 하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200만원도 주라고 판결했다. 다만 동행한 송군 아버지가 눈썰매를 밀어 출발시켰고 사고 발생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며 눈썰매장 책임을 50%만 인정했다. 2심 재판부도 “눈썰매장이 280만원을 지급하라”며 지난 8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고, 양측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아 이 결정은 그대로 확정됐다.
사건을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황철환 변호사는 “아무리 영세한 눈썰매장이라도 체육시설에 해당되기 때문에 법에 따라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에 안전요원을 1명씩 모두 2명 배치해야 한다는 의무를 처음으로 확인한 판결”이라며 “스키장과 눈썰매장 등은 안전요원 배치 의무를 숙지해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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