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부패와 정경유착 의혹 등으로 내홍을 겪은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넬슨 만델라의 후계’로 불리는 시릴 라마포사(65) 현 부통령을 새 당대표로 선출했다. ANC내 반(反)주마 진영을 이끌던 개혁가 라마포사의 승리로 ANC는 주마 정권의 부패와 결별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당내 남아 있는 친(親)주마 잔여세력과 맞서 실질적인 개혁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평가도 나왔다.
남아공 일간 메일앤드가디언에 따르면 라마포사는 18일(현지시간) 발표된 ANC 당 지도부 선거 결과 총 2,440표를 얻어 2,261표에 그친 경쟁자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68)를 아슬아슬하게 꺾고 당권을 쥐었다. 라마포사는 2014년 주마 대통령으로부터 부통령 자리를 받았으나 ANC 내에서는 주마 대통령과 대립되는 개혁파 실용주의 노선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올해 “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당권 도전을 선언한 바 있다.
그와 경쟁한 들라미니는 주마 대통령의 전 부인으로 1998년 이혼했지만 이후에도 주마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참여하는 등 정치적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주마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 결과는 표면상 반주마파가 친주마파를 꺾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라마포사는 남아공 내 최대 노조인 남아공노동조합회의(COSATU) 노조위원장으로 인종분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을 펼쳤다. 이후 정계로 진출, 1991년부터 ANC 협상대표로 당시 집권 국민당과 아파르트헤이트 종료 협상에 임했다. 1997년에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에 의해 차기 대권주자로 지지를 받았으나 당은 타보 음베키 전 대통령을 새 지도자로 선택했다. 이후 라마포사는 한동안 정계를 떠나 기업가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돼 왔으며, 끝내 첫 번째 도전 후 약 20년 만에 당권을 쥐게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비롯한 서구 언론은 라마포사가 주마 정권의 실정과 부패로 위기에 빠진 ANC를 구하고 남아공 정치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했다. 게다가 남아공은 의회에 대통령의 선출 권한이 있기 때문에 당장 라마포사는 주마 대통령을 당에서 제명해 그의 사임을 압박할 수도 있다. 과거 주마 대통령이 전임 음베키 대통령을 같은 방식으로 대통령직에서 축출한 바 있다. 라마포사가 ANC를 이끌게 되면서 각종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여덟 차례의 불신임 투표를 모두 이겨냈던 주마 대통령의 퇴임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라마포사가 여전히 당 내에 일정 세력을 형성한 친주마 세력의 도전에 시달릴 가능성도 높다. 특히 이번 선거는 라마포사 진영인 CR17과 들라미니 진영인 NDZ 양 계파로 분리돼 치러졌는데, 지나치게 거친 계파 간 충돌로 ANC가 2019년 선거를 치르기 전 두 정당으로 쪼개질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최종적으로 라마포사와 함께 선출된 지도부 5대 직위 중 당의장과 재무국장은 CR17, 당 부대표ㆍ사무총장ㆍ사무차장은 NDZ 쪽으로 돌아갔다. 정치평론가 리처드 칼란드는 당내 소위 ‘톱 6’를 양대 계파가 동등하게 분할했다며 “라마포사가 상처뿐인 승리를 거뒀다. 자신은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그의 파벌은 패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