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아역관리 스태프 배치
흡연 장면에 담배 대신 진해거담제 쓰기도
연극 ‘메디아’ 아역들 어머니에 피살 연기
색깔치료 도입해 정서적 충격 줄여
지난달 28일부터 국내 공연 중인 ‘빌리 엘리어트’는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2005년 초연된 이후 전세계에서 1,100만명의 관객이 관람한 인기 뮤지컬이다. 고민은 인기 요인에서 비롯됐다. ‘빌리 엘리어트’는 1984년 영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발해 광산 노동자들이 장기 파업에 돌입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기에 비속어가 무시로 등장하고, 등장인물이 흡연하는 장면도 많다. 주인공 빌리가 발레를 처음 접한 뒤 굳은 심지로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는 과정, 아들을 위해 동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탄광으로 돌아가려는 빌리 아버지의 모습 등이 가족 단위 관객에게 감동을 줄만하지만 아이들이 관람하기엔 부담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극을 이끄는 건 27명의 아역배우다.
영화나 방송은 편집과 컴퓨터그래픽(CG) 등을 통해 폭력적인 장면으로부터 아역배우를 분리할 수 있지만 무대 공연은 그렇지 않다. 공연은 관객과 시청자의 수준을 고려한 공식 관람연령등급도 없다. 공연제작사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빌리 엘리어트’ 속 거친 언어들은 작품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영국 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한 작품이라 국내 공연 때 대본을 수정하기도 어렵다. 한국 공연 제작을 맡은 신시컴퍼니는 “번역된 대사를 받았을 때 (출연하는) 아이들이 놀라는 부분도 있었다”며 “이런 욕은 작품상 흐름이고, 작품 안에서 필요한 것이니까 일상 생활과는 다른 것이라고 구분해서 가르쳤다”고 밝혔다. 완전한 수정은 어렵지만 욕설의 등장 횟수를 줄이고 욕의 어원을 우리 식으로 바꾸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무대 위 흡연 장면에 따른 ‘연소자 피해’도 최소화하려 했다. 배우들은 담배대신 ‘진해거담제’를 피운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완전히 무해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4월 공연된 국립극단의 ‘메디아’는 20세 미만은 관람할 수 없는 작품이었지만 아역배우가 등장했다. 극의 말미에 주인공 메디아는 자신의 두 아들을 살해하고, 아역배우들은 새빨간 물감이 칠해진 옷을 입고 무대 위에 쓰러진다. ‘피 분장’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국립극단은 ‘색깔치료’를 도입했다. 전체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와서 연극 속 장면을 놀이처럼 생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아역배우들이 불필요하게 잔인한 장면에서는 아예 연습에 참석하지 않게 했고, 공연 중에도 그 장면은 아이들이 모니터 하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아역배우들이 등장하는 공연은 점점 늘고 있다. 내년 하반기 국내 초연하는 ‘마틸다’도 9명의 어린이들이 극을 이끈다. 무대 밖에서도 아역배우 보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신시컴퍼니는 국내 근로기준법과 원작사인 호주 프로덕션에서 마련해 놓은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 통상 저녁에 시작해 밤 늦게 끝나는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위해 법적 보호자의 동의를 구했고, 아이들은 노동 시간은 하루 7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빌리 스쿨에 참석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학교를 빠지더라도 의무 출석일수를 우선했다. 아역배우를 전담 관리하는 스태프인 ‘샤프롱’의 역할도 중요하다. 작품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무대 뒤 대기실에서는 학교 숙제까지 챙기는 게 샤프롱의 역할이다.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샤프롱 6명이 배치됐다.
각 제작사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역배우들의 학습권까지 보장하는 미국 등에 비해서는 우리나라의 제도적 수준은 미비하다. 지혜원 공연평론가는 “외국에서는 노동시간 준수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를 빠진 날짜만큼 수업을 보충 받을 수 있게 가정교사를 배치하는 것까지 계약서 안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지 평론가는 “성인인 배우가 청소년 역할을 맡는 경우도 많다. 아역배우 보호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는 어린 관객 입장에서도 공연의 내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 ‘빌리 엘리어트’ 호주 프로덕션의 아역배우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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