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에게 의예과에 지망했다고 속이고 간호학과에 지망했다가 한때 노여움을 샀다. 남성 불모지대에서 열심히 익히겠다.” 1977년 남학생으로는 처음 서울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윤철수씨의 다짐이다. 서울대는 윤씨에게 유학 등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위생병으로 복무하던 중 대입시험을 다시 치러 사립대 의대에 진학했다. “‘남자가 무슨 간호사를…’ 하고 혀를 차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난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사람인데, 자꾸 그쪽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 한국 남자간호사 1호는 간호원양성소를 나와 1962년 면허를 받은 조상문(80)씨. 61년까지 22명의 남자간호사가 양성됐으나 당시에는 여자만 면허를 받을 수 있었다. 남녀 차별이라는 비난에 문호가 개방됐다. 현재 남자간호사는 1만2,676명. 전체 간호사 면허 취득자의 3% 정도다. 올해 간호사 국가시험에서 남자 합격자가 처음 10%를 넘었고 간호대 남학생 비율도 15%를 웃돌아 남자간호사는 급증할 전망이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산업 확대, 취업난, 직업 선택의 성차별 붕괴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남자간호사는 상대적으로 힘이 드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정신병동에 주로 배치된다. 몸이 마비된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거나 침대에 눕히는 건 중노동이다. 비뇨기과 등 여자간호사를 꺼리는 분야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신생아실이나 일반 병동에도 남자간호사가 종종 눈에 띈다. 소수라서 겪는 편견과 어려움은 있다. 민감한 신체 부위를 다룰 때 여자 환자들이 기피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자간호사로 바꿔 달라”고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환자도 있다. 남자간호사를 위한 탈의실 휴게실 등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 최근 10년간 여성이 지배하던 영역에서 남성 비중이 가장 크게 늘어난 게 간호 업무다. 미국은 남성간호사 비중이 13%에 달한다. 간호사가 여성 직업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해졌다. 간호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직업이다. 간호사 근무환경이 열악할수록 환자 사망률이 올라간다. 군과 검찰, 중장비 운전, 메이크업, 요리 등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이 사라지고 있다. 여검사, 여의사라는 단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검사, 의사일 뿐이다.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남녀 구별 없이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으로 대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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