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업 종사자인 백모(56)씨는 2006년 병원에서 뇌전증(간질) 확정 진단을 받았다. 처음 발작이 찾아 온 게 1999년이었지만, 그 때만 해도 ‘의심이 되는 정도’였던 증세가 점점 나빠진 것이다.
백씨는 병원 진단을 받고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꾸준히 먹어야 할 약도 처방만 받았을 뿐 건성으로 넘겼다. 그 때문에 몇 번의 발작을 다시 경험한 것은 물론 목과 팔꿈치, 무릎이 아파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2011년에는 거래처 공장에서 직원과 말다툼을 하다가 갑자기 온 몸이 굳으면서 정신을 잃기도 했다. 서서히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당장 입원 치료를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했지만, 백씨는 이를 무시했다.
문제는 백씨가 매일 운전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간 발작으로 접촉사고도 몇 차례 경험했다. 사고 얘기를 들은 주치의는 “운전 중 발작이 일어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절대 운전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씨는 의사 경고를 무시한 채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서울 도봉구 한 3차선 도로에서 2차선을 달리다 발작이 일어나면서 백씨는 오른쪽 3차선을 달리던 차량 뒤를 받고 인도로 곧장 돌진, 보행자 5명과 포장마차 주인을 덮쳤다. 차량은 지하철 역 앞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에야 멈췄다. 피해자들은 골절 등 부상을 당했고, 전치 12주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백씨는 경찰 조사에서 “진로를 3차선으로 바꾼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깨어나니 에어백이 터져있었고 차 밖으로 나와서야 상황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백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서울북부지법 형사2단독 김병수 부장판사는 백씨에게 금고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위험성이 대단히 높은데도 운전을 하지 말라는 의사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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