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욱 한일전 멀티골 4-1 승리
한국 동아시안컵 2연패 일등공신
공수 반경 넓히며 경쟁력 입증
이번 대회 3골로 득점왕 올라
수비수서 공격수 변신 진화 거듭
개인 트레이너 고용 몸관리 철저
토요일(16일) 밤, 한일전을 본 국내 팬들은 “정말 오랜만에 축구 볼 맛 난다”고 입을 모았다.
신태용(48)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2017 동아시아연맹(EAFF) E-1 챔피언십(이하 동아시안컵) 마지막 경기에서 4-1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다. 승리의 일등 공신은 197.5cm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29ㆍ전북 현대)이었다.
그는 0-1로 뒤지던 전반 13분 타점 높은 헤딩 슈팅으로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어 전반 23분 정우영(28ㆍ충칭 리판)의 기막힌 무회전 프리킥 골로 한국은 경기를 뒤집었다. 전반 35분 김신욱은 이재성(25ㆍ전북 현대)의 패스를 왼발로 침착하게 마무리해 또 그물을 갈랐다. 후반 24분 염기훈(34ㆍ수원삼성)이 프리킥으로 한 골을 더 보태자 경기장을 메운 3만6,000여 명의 일본 팬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관중석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생겼다. 한국은 2승1무로 일본(2승1패)을 제치고 대회 2연패를 차지했고 중국전 1골 포함 이번 대회 3골을 기록한 김신욱은 득점왕에 올랐다. 이 밖에도 한국은 이재성이 최우선수(MVP), 장현수(26ㆍFC도쿄)가 최우수 수비상, 조현우(26ㆍ대구FC)가 최우수 골키퍼상을 받으며 동아시안컵을 ‘한국 잔치’로 장식했다.
김신욱은 편견과 싸우며 진화를 거듭해 온 공격수다. 중앙대 시절까지 중앙수비수였던 그는 2009년 울산 현대에 입단한 뒤 김호곤(66) 당시 감독의 권유에 의해 공격수로 변신했다. 처음에 김신욱은 포지션 변경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그는 큰 키를 무기 삼아 차세대 공격수로 성장해나갔고 2009년 말 생애 처음으로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헤딩은 위협적이지만 스피드가 느리고 드리블, 시야는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반쪽’ 선수였다.
김신욱은 엄청난 노력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2013년부터 자비를 들여 개인 트레이너 이창현씨를 고용해 철저한 몸 관리에 들어갔다. 큰 키 때문에 상ㆍ하체 밸런스가 다르다는 지적에 일상 속 동작 하나하나를 훈련으로 바꿨다. 집이나 숙소에서 시간만 나면 두 팔을 쭉 펴고 한 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균형 감각을 키웠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트레이너의 주문대로 ‘로봇’처럼 움직였다. 덕분에 그는 머리 뿐 아니라 발도 잘 쓰는 ‘전천후 폭격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2013년 프로축구 최우수선수(MVP), 2015년 득점왕을 수상하며 K리그를 호령했다.
그러나 태극마크만 달면 여전히 작아졌다. 김신욱의 제공권은 A매치에서도 위력을 발휘했지만 그에 반해 역할도 한정적이었다. 그는 경기가 안 풀릴 때 후반에 투입돼 전방으로 날아오는 높은 공을 직접 해결하거나 동료들에게 연결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다. 홍명보(48)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과거 국가대표 사령탑 시절 “김신욱이 들어오면 우리 플레이가 (길게 크로스만 올리는 형태로) 단순해진다. 상대에 우리 전술을 알려주고 경기하면 치명적이다”는 말도 했다. 홍 감독뿐 아니라 전임 국가대표 감독들도 비슷한 이유로 김신욱을 중용하지 않았다. 그를 공격수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호곤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프로에서는 김신욱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시즌 내내 동료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있지만 잠깐 잠깐 소집하는 대표팀에서는 쉽지 않다”고 이런 딜레마의 원인을 진단했다. 김신욱은 K리그에서 300경기를 뛰며 112골을 넣었지만 A매치 기록은 이번 동아시안컵 전까지 38경기 3골로 초라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 기회로 삼았다. 김신욱의 개인 트레이너로 그와 인연을 맺은 뒤 지금은 ‘김신욱 축구교실’에서 일하는 이창현 코치는 “김신욱은 몸 관리는 오래 전부터 누구보다 성실하게 했다. 최근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며 “동아시안컵을 앞두고는 연구에 집중했다. 수시로 비디오를 보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플레이를 해야 대표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대표팀 동료는 물론 신태용 감독, 김남일(40)ㆍ차두리(37) 코치와도 수시로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접점을 찾아갔다. 김신욱은 올해 휴대폰도 스마트폰에서 2G 폰으로 바꿨다. 스마트폰만 들면 자연스럽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기사를 검색해보게 되는데 이런 습관을 아예 끊고 축구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노력이 빛을 봤다. 동아시안컵에서 김신욱은 과거처럼 상대 진영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중앙선 부근까지 내려와 볼을 받아주고 때로는 측면으로 빠져 상대 수비를 끊임 없이 괴롭혔다. 거구의 그가 이렇게 움직이려면 당연히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신욱은 올 시즌 프로리그를 마치고 휴식기 때도 매일 ‘새벽기도–오전운동-오트밀, 과일주스 섭취-낮잠-가족과 함께 점심식사 등 여가-오후운동-저녁식사-비디오 분석-취침’ 등 시계바늘 같은 삶을 살며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물론 동아시안컵 활약만으로 그가 확실한 국제 경쟁력을 갖췄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내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김신욱 사용설명서’의 힌트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대표팀에는 큰 소득이다. 그는 “신태용 감독님이 죽어가던 나를 살려주셨다”며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더 발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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