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 4-1 대승(16일 동아시안컵 최종전)은 경기 후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 A매치 경험이 적은 젊은 선수들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다. 반면 한국은 유럽파 주축 선수들이 빠진 건 일본과 마찬가지지만 K리그의 정예 멤버들을 호출했다. 한국이 조금 우세할 걸로 예상은 했지만 4-1이라는 스코어는 뜻밖이다.
한국이 일본을 이긴 건 2010년 5월 사이타마(2-0) 대결 이후 7년 7개월(2,764일)만이다. 한국은 최근 일본과 격돌에서 5경기 연속 무승(3무2패)으로 고개를 숙였다. 한국이 일본에 3골 차로 이긴 건 1972년 7월 메르데카컵 준결승(3-0) 이후 45년 만이다. 일본에 4골을 넣은 건 1979년 6월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 한일정기전(4-1) 이후 38년 만, 일본 원정에서 4골 이상 기록한 건 1954년 3월 스위스 월드컵 최종예선(5-1) 이후 63년 만이다.
새로운 스타도 탄생했다. 정우영(28ㆍ충칭 리판)은 1-1로 팽팽하던 전반 23분 기가 막힌 무회전 프리킥 골로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무회전 킥’의 일인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2ㆍ레알 마드리드)를 보는 것 같았다. 7년 만에 재현된 ‘산책 세리머니’도 통쾌했다.
염기훈은 프리킥으로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은 뒤 천천히 달리며 침묵에 빠진 일본 응원단을 바라봤다. 박지성(36ㆍ은퇴)이 2010년 5월 사이타마에서 벌어진 일본과 평가전에서 득점 후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을 조용히 응시하며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아 큰 화제를 모았던 세리머니를 똑같이 따라 했다.
일본은 참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17일 ‘2010년 이후 7년 만의 굴욕’이라며 참패 소식을 전했다. 산케이 스포츠는 경기 뒤 “(해외파를 포함한) 모든 멤버가 와도 한국을 이길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힌 바히드 할리호지치(65) 일본 감독의 인터뷰를 지적하며 “감독으로서 적합한 말이었는지 모르겠다. 올해 마지막 A매치였는데 월드컵에 대한 불안감만 쌓였다”고 꼬집었다. 다지마 고조 일본 축구협회장은 “오랜만에 이런 한심한 경기를 봤다”고 질타했다.
반면 완승을 이끈 신태용(48) 국가대표 감독은 담담했다. 현장에서 우승 헹가래도 사양한 그는 17일 귀국해 “한일전에 대한 압박감이 컸는데 결과와 과정 모두를 얻었다”면서도 “우리는 월드컵에서 훨씬 더 강한 팀과 만난다. 월드컵까지 실수를 줄여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신 감독은 하루만 쉰 뒤 19일 곧바로 유럽으로 떠나 국가대표 선수들을 직접 점검한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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