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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벽돌책’은 옛말… 이젠 쪼개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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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벽돌책’은 옛말… 이젠 쪼개야 읽힌다

입력
2017.12.17 14: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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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테마로 매달 출간

출판사 천년의상상 내달부터

‘월간 정여울’ ‘자본론’ 등 선봬

대중에 다가가는 출판사

민음사ㆍ창비ㆍ열린책들…

눈높이 맞춘 서적 속속 펴내

모바일 시대의 ‘돌파구’

밝은 표지ㆍ쉬운 문체로

새 독자 끌어들이기 노력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 '월간 정여울'에 이어 '월간 자본론' 등 월간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 '월간 정여울'에 이어 '월간 자본론' 등 월간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자본론에 대한 책이야 예전에도 많았죠. 저도 800쪽짜리 두 권으로 만든 책을 편집해서 낸 적이 있고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묵직한 방식으로 교양을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어떤 접근법을 써야 할까 고심하다 이런 형태를 생각해낸 겁니다.”

17일 출판사 천년의상상 선완규 대표의 말이다. 선 대표가 최근 골몰하고 있는 아이템은 ‘월간 프로젝트’다. 가수 윤종신이 휘발성이 강한 디지털 세상에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매달 테마에 맞춘 음악을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을 만들었듯, 한가지 테마를 정해 그 주제에 맞는 책을 매달 꾸준히 내는 것이다.

첫 선을 보이는 것이 ‘월간 정여울’이다. 매달 의성어나 의태어 하나를 주제로 잡고 그 단어에 대한 에세이를 낸다. ‘똑똑’ ‘콜록콜록’ ‘까르륵까르륵’ ‘와르르’ ‘달그락달그락’ 등 12개 표제어를 정해뒀다. 내년 1월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각 권은 130쪽 정도 분량으로 가격은 9,900원으로 정했다. 원고는 상당 부분 완성됐다.

의성어, 의태어를 키워드로 삼은 에세이 '월간 정여울'을 내는 정여울 작가.
의성어, 의태어를 키워드로 삼은 에세이 '월간 정여울'을 내는 정여울 작가.

다음 프로젝트도 있다. ‘월간 자본론’(가제)이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12가지 주제로 나눠 한 달에 한가지 주제 1권씩 모두 12권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자본론 강의니까 에세이보다 좀 더 묵직하다. 그런다 한들 권당 140쪽 안팎에 1만2,000원 정도의 가격이 매겨질 예정이다. 필자로는 마르크스뿐 아니라 게오르그 짐멜의 화폐론까지 다뤘던 것으로 유명한 수유너머 출신 고병권 고려대 연구교수가 나선다. 원고는 완성단계로 내년 하반기쯤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월간 정여울’이 정기구독자를 모아 안정적 출발을 기약했듯, ‘월간 자본론’은 북클럽 형식으로 독자층을 규합할 생각이다. 그 다음 타깃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다. 포스트모던이 바람이 불면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철학자가 스피노자였고, 스피노자의 대표적 책으로 ‘에티카’가 꼽힌다. 동시에 이해하기 까다로운 책 중 하나로도 꼽히다. 현대철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화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철학자 고병권 고려대 연구교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새롭게 읽어낸 ‘월간 자본론’을 낼 예정이다.
화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철학자 고병권 고려대 연구교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새롭게 읽어낸 ‘월간 자본론’을 낼 예정이다.

들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두툼하고 묵직한 ‘벽돌책’이 쪼개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다. 원래 이런 접근은 문학 분야에서 먼저 시작됐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읽기 습관, 독서 기술을 갖추지 못한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시작됐다. 책 읽는다고 죽진 않을 테니 일단 한번 펴보라는 것이다.

쏜살문고
쏜살문고

민음사는 ‘쏜살문고’가 대표적이다. 민음사의 간판 상품이었던 세계문학전집을 가벼운 문학전집으로 새롭게 내놨다. 두터운 흑암색 표지에 금박 글자를 박아 권위를 드러내던 옛 방식을 버리고 200쪽 안 되는 분량에 1만원 안팎의 가격을 붙여 파스텔톤 밝은 표지를 썼다. 민음사 관계자는 “가볍게 접근해보자는 문고의 취지에 잘 들어맞는다면 학술서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창비가 선보인 '소설의 첫만남'.
창비가 선보인 '소설의 첫만남'.

창비도 적극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겨냥한 잡지 스타일의 ‘책 읽기 마중물’ 시리즈, 각 분야 석학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인 ‘어린이 대학’을 각각 내놨다. 문학 입문자들을 위한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도 내놨다. 창비 관계자는 “학교 현장에 물어보면 학생들의 독서력 차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면서 “분량이 적고 그림이 많아서 그 간격을 메워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반응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같은 묵직한 작가의 두터운 작품으로 각인된 열린책들은 200쪽 정도에 1만원 정도하는 소설들을 ‘블루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내놨다. 사계절 출판사도 20~30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내세운 ‘욜로욜로’ 시리즈를 내놨다. 1인 출판사 코난북스와 위고, 제철소 3곳이 힘을 합친 ‘아무튼’ 시리즈도 꽤 화제를 모았다.

출판계는 새로운 시도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모바일 시대 탓을 할 것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도 좀 더 가벼워져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사회평론) ‘라틴어 수업’(흐름출판)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동아시아) 같은 책들은 어려운 주제를 곁에서 말로 설명해주는 듯한 강연식 문체로 풀어내 인기를 끌었다. 그간 ‘벽돌책 전략’은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묵직한 고급독자층에겐 만족감을 줄지 몰라도 새롭게 책에 입문하는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안전하지만 시장을 넓히진 못한다는 얘기다. 선완규 대표는 “호기심 있는 새로운 독자를 끌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쪼개기’ 트렌드가 마냥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얇고 가볍게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질적인 측면을 도외시한다면 출판사가 이미 보유하고 있던 콘텐츠의 단순 재활용하는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새로운 필자나 스타일을 개발하고 편집적인 참신함을 보여줘야만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설득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박혜인 인턴기자(중앙대 정치국제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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