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하기도 허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마치 햄릿의 고민과도 같다. 바로 암호화폐 이야기이다. 블록체인과 함께 제4차 산업혁명의 아이콘 중 하나였던 것이 어느 한 순간 뜨거운 감자가 되어 버렸다. 과열된 시장의 투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형성되고 미래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다. 남은 것은 학교 강의실에서부터 채소밭의 비닐하우스까지 널리 퍼진 채굴기와 SNS를 가득 채운 ‘가즈아(암호화폐 투자자들이 호재를 외치는 은어)’ 뿐이다. 최근에는 고등학생들까지도 투기에 뛰어드는 등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200만 명이 6조원 규모의 거래를 하고 있다.
잘못된 정보도 이런 혼란에 일조한다. 일본은 법정통화로 인정했다는 글들이 넘쳐난다. 법정통화라면 공·사적 영역 어디에서든 해당 지불수단을 제시할 경우 별도의 특약이 없는 한 상대방은 이를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정통화는 아니며 지급결제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선물거래의 대상이 되었다고 금융상품이라는 것도 잘못이다. 석유, 옥수수 등은 선물거래의 대상이지만 그 자체가 금융상품은 아니다. 선진국들은 모두가 받아들였는데 우리만 뒤떨어졌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연합 회원국 대부분이 적극적 인정은 하지 않으면서 단계적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금의 투기광풍은 1630년대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에 비유된다. 튤립 알뿌리 시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격상승을 기대하고 사재기를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가격이 20배가 올랐으며, 비싼 알뿌리 하나는 숙련공의 10년 분 급여와 맞먹었다. 국가가 규제에 나서면서 가격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이는 네덜란드의 국력이 하락세로 전환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암호화폐를 금지하기도 어렵다. 투기가 문제인 것이지 블록체인 기술과 이를 활용한 암호화폐의 가능성은 여전히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규제를 할 것인가에 대해 각국은 비슷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안전한 거래를 위해 거래소의 설립요건으로 최저자본금을 설정하거나, 일정 수준의 보안기술 및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서는 과세도 이루어진다. 금융영역으로 불안요소가 확산되지 않도록 금융기관들에게 암호화폐의 자산매입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범죄 및 도박자금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자금세탁에 대한 대응도 시작되었다.
현상은 항상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함께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정부가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다른 나라 역시도 어느 정도가 균형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두가 처음인 탓이다. 그래서 국제적 공조도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가 자율규제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은 정부가 선택을 보다 쉽게 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월 ‘블록 0’라고 부르는 비트코인의 첫 번째 파일이 형성되었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암호화폐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간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제도적 보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화폐의 본질은 신뢰와 보편성에 있다. 모두가 믿고 받아들이면 화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암호화폐를 보면 그 신뢰가 자리 잡기 어려워 보인다. 전체 비트코인의 40%를 1,000여명이 독점하고 있는 것은 보편성의 걸림돌이다. 따라서 말 그대로 ‘화폐’로 나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관문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왜곡된 시장의 모습도 그 중 하나이다. 시장의 혼란이 새로운 삶을 이끄는 진통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상처만을 남기는 고통이 될 것인지는 시장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지금 우리에게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가 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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