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내 생일이 다가오자 큰 아들이 선심 쓰듯 물었다. “엄마 생일선물 겸 크리스마스 선물로 샤워 꼭지 사드릴까요?” “샤워 꼭지?” “지금 있는 목욕탕 샤워기를 빼고 대신 달 수 있는 거요. 물이 훨씬 세게 나와요.” “임마 그게 무슨 생일선물이야, 그냥 생활용품이지. 싫어!” “물 나오는 형태도 여러 가지로 조절할 수 있는데, 진짜 싫어요?”
샤워 꼭지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내심 기대했는데… 녀석은 책을 한 권 선물로 사왔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세일 하기에 사왔어요.” “생일선물로 이렇게 두꺼운 책? 흠, 책이 싫은 건 아니지만… 생일선물이라면 엄마는 뭔가 좀 작고 반짝거리는 게 더 좋아. 내년에는 참고해라.”
그 이듬해 아들은 작고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 여자친구에게 문의한 후, 절대 만 원은 넘지 않아 보이는 귀걸이를 선물로 가져왔다. 예쁘다고 좋아하는 내 옆에서 녀석이 중얼거렸다. “이게 뭐가 좋다고 참… 나라면 샤워꼭지가 훨씬 더 좋은데.”
또 다음해, 형과 엄마의 수작을 지켜보며 선행학습을 한 막내도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을 포기하고 귀걸이를 내 생일선물로 사왔다. 한마디 덧붙이는 건 둘째도 물론 잊지 않았다. “엄마는 이게 정말 예뻐요? 난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요.”
몰래 선물을 사서 숨겨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이브,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꺼내두던 때가 생각난다. 큰 애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는 산타클로스의 선물인 척 연극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작에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아버린 첫째가 둘째에게 산타의 정체를 폭로했지만, 엄마 아빠가 실망할까 봐 산타를 믿는 척했단다.
크리스마스 쇼핑 대신 여러 나라의 크리스마스 광고를 검색해 본다. 광고 안에서는 여전히 산타가 존재하고 루돌프가 썰매를 끈다. 멀어졌던 가족들이 작은 선물과 포옹으로 화해를 나누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대하게 하는 환상들이 가득하다. 인터마르쉐(Intermarché)라는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의 2017년 크리스마스 광고를 보자.
크리스마스 별 장식이 매달려 있는 프랑스 한 작은 마을의 광장. 광장 한가운데 푸짐한 몸집의 산타클로스가 앉아서 동네 어린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던 다섯 살쯤의 사내 아이가 뚱뚱한 산타의 무릎에 앉는다. 아이는 산타클로스의 배를 만져 보더니 다급하게 집으로 뛰어가 벽난로의 굴뚝을 쳐다 본다. 굴뚝은 산타의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 아이는 실망해서 누나에게 말한다. “산타는 절대 이 굴뚝으로 못 내려와…”
그 날부터 남매는 산타 다이어트 작전에 돌입한다. 누나는 요리책을 들여다 보고 동생은 식재료를 고른다. 얼굴만한 양상추, 양배추즙, 퀴노아 샐러드, 달걀, 생선 등 건강식을 산타클로스에게 가져다 나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산타를 위한 간식으로 우유 한 잔과 아티초크 한 송이를 준비해 두고 잠이 든다. 16억 명의 아이들이 성탄 전야에 산타를 위해 우유와 비스킷을 차려 놓는다는, 광고 제작 단계에서 발견한 데이터에 착안한 메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아침,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무사히 쌓여있는 선물들! 산타의 다이어트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잘 먹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2017년이 저물어 가고 어김없이 크리스마스와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생일에는 아이들에게 작고 반짝이는 것 대신 손수 차린 밥상을 대령하라고 할까 보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민해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라고 하면 녀석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올해는 산타 부럽지 않게 배가 나오고 있는 엄마의 다이어트를 위해 인터마르쉐 광고 속의 남매들처럼 건강식을 지어 달라고 해봐야겠다.
인터마르쉐(Intermarché)_TVCM_2017_스토리보드①
인터마르쉐(Intermarché)_TVCM_2017_스토리보드②
인터마르쉐(Intermarché)_TVCM_2017_유튜브링크
정이숙 카피라이터ㆍ(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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