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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억울하다] 우린 아직 ‘청년기본법’도 없어… “기성세대가 정책 마련 나서라”

입력
2017.12.16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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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이 안 통하는 꼰대다"

"젊은 애들은 이래서 문제"

온라인ㆍ직장ㆍ가정 등서 난무

"세대갈등 커" 60대 45%, 20대 72%

#2

고도성장→ 긴축경제로 바뀌면서

실질임금 안 올라 젊은층 힘들어

청년들 '기성세대=갑' 몰지 말고

그들의 노력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지난 1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꼰대 프레임’에 대선의 발목이 잡혔다. 그는 조선대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언급하며 “정 일자리가 없으면 봉사로라도 세계 어려운 데를 다녀 보는 게 중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세계 인류와 같이 고통을 나눠 보겠다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성 취업난에 시달려 온 청년들은 “열정페이를 넘어서 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란다”며 그의 발언에 경악했다. 조언이라고 한 말이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이견과 갈등이 없던 시절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위험 수준이라 할 만큼 세대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말이 안 통하는 꼰대’, ‘젊은 애들은 이래서 문제’라는 비난이 온라인 커뮤니티, 직장, 정계, 지하철, 가정에서까지 난무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2016년 19~75세의 국민 3,6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 및 국민인식조사’에서 10년 후 고령자와 젊은이 간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62.2%에 달했다. 2014년 조사된 56.2%보다 6%포인트나 높았다. 세대 갈등은 왜 심각해졌으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젊은 세대가 세대 갈등 더 크게 느껴

젊은층에게 노년층은 양보나 관대함 없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웹사이트에 ‘노인들은 자신들을 위한 복지에는 찬성하면서 다른 계층(아동)의 복지에는 반대한다’며 ‘노인 전철 무임승차 폐지’ 청원이 올라온 것이 단적인 예다. 노년층만 비난의 화살을 받는 것도 아니다. 86세대(50대), 영 포티(40대 초반)에 대한 2030세대의 반감도 만만치 않다. 영포티의 부상을 분석한 한 기사에는 ‘영포티 진짜 역겹다. 젊게 즐기고 싶고 책임을 지지 않지만 권력을 이용해 젊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세대’ ‘영포티? 힘들어 다 죽게 생겼는데’ ‘40대는 영포티, 30대는 앵그리 써티, 20대는 헝그리 투웨니’와 같은 험악한 댓글이 달린다.

젊은 세대는 세대 갈등을 더 크게 실감한다. 2013년 아산정책연구원 ‘아산 데일리 폴’에서 19세 이상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사회갈등요인 평가에서 세대 갈등이 크다는 응답이 60세 이상은 44.6%에 불과했으나 50대 56%, 40대 62.1%, 30대 69.5%, 20대는 71.9%에 이르러 연령이 낮을수록 세대 간 갈등을 심각하게 여겼다.

젊은층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목은 “우리 때도 힘들었는데 왜 요즘 애들은 인내도 패기도 없냐”는 힐난이다. 이정희(가명ㆍ23)씨는 대학교 재학 중 전공수업 시간 때 교수의 말에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교수는 학생들에게 “너희는 열정이 없다. 요즘 세상에서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데 너희들이 열심히 안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씨는 “같은 학번 동기도 많지 않아 유학 다녀와 쉽게 교수로 임용된 분으로 아는데, 그런 말을 하는 데에 어이가 없었죠”라고 말했다.

갈등의 핵심은 저성장경제로의 변화

이택광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환경의 변화가 격화하는 세대 갈등의 근본 요인이라고 진단한다. 이 교수는 “세대 문제는 경제적 문제이자 계급의 문제”라며 “한국이 고도성장에서 긴축경제로 바뀌면서, 실질 임금이 상승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절대적으로 임금을 적게 받는다. 젊은 세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성세대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박탈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됐던 이병태(57) 카이스트 IT경영대 교수와 박찬운(55)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거친 논쟁은 ‘취업 걱정 없던 고도성장기’ vs ‘고용 없는 저성장기’의 시각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교수는 “지금이 가장 풍요로운 시대”라며 “젊은 세대는 앞 세대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에 대한) 반성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려 논란의 불을 당겼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한민족 5,000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모세대는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도, 영어를 못해도 신의 직장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어림 반푼도 없는 말”이라며 젊은 세대를 대변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86세대와 영 포티는 실제로 ‘누린 세대’다. 1984년 10.4% 등 10%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80년대를 거쳐 199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를 넘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 불리는 시대를 살았다. 노력만 하면 취업이든 장사든 돈벌이가 가능했고, 이제 재계ㆍ법조계ㆍ문화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9.2%의 청년실업률과 21.4%의 청년체감실업률(15~29세, 11월 기준)을 체화한 청년세대에게 “학생운동 하느라 많은 것을 희생했다”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세대 갈등은 경제적 문제이자 계급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대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는 젊은이들의 박탈감도 세대 갈등에 한 몫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세대 갈등은 경제적 문제이자 계급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대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는 젊은이들의 박탈감도 세대 갈등에 한 몫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물론 기성세대가 황금기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취업을 앞둔 20대, 가정을 책임져야 할 30ㆍ40대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직장을 잃고 중산층에서 탈락한 경험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풍파를 이겨 낸 이들은 젊은 세대가 나약하게만 보인다. 주부 김모(56)씨는 “우리 세대는 스스로를 희생해 젊은 세대를 키웠는데, 기성세대 탓만 하는 젊은 세대가 야속하다”고 하소연했다.

이택광 교수는 “IMF로 인해 중산층이던 많은 사람들이 그 삶을 잃고 중산층에서 탈락했다. 그들은 강남 아파트에 살다가 의정부나 동두천으로 이사를 가는 상황을 겪었다. 큰 실패를 경험한 세대는 꿈을 포기하고 축소하는 방향으로 삶을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성세대를 갑으로만 몰아붙이기 전에 그 세대의 노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정책 마련에 기성세대가 나서야

벌어진 세대 간 틈을 메우기 위해 전문가들은 기성세대가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부모세대가 된 86세대는 권위에서 벗어나는 교육을 몸으로 겪으면서 자란 세대다. 그런 세대가 아래세대에 권위를 내세우는 건 모순”이라며 “권위보다는 권한을 이용해 청년세대를 위한 정치ㆍ입법적인 노력을 시작하는 등 사회를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청년기본법도 없는 상태예요. 청년을 위한 법안이라고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하나 만들어진 상태입니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20년 전부터 청년기본법을 시행하고 있어요. 벌써 몇 년 동안 국회에 청년기본관련법이 6건이나 계류돼 있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얼마 전 은퇴한 박모(62)씨는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청년실업과 대기업, 중소기업, 하청 등 구조적인 문제를 젊은 세대에 물려준 것에 대해 ‘빚을 졌다’고 표현했다. 다만 그는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랐다. “우리 세대도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고 휴일에도 일했고, 가족 먹여 살리느라 대리운전까지 안 해 본 일 없었어요. 이런 것도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은데 젊은 사람들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교수 역시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조언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위한 정책에 대한 지지를 보낼 필요가 있어요. 기성세대가 나서서 청년층의 일자리나 양극화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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