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의회 표결 패배로 타격을 입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날아온 선물로 한숨을 돌렸다. 27개국 정상으로 구성된 EU 정상회의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 예비단계가 충분히 이뤄졌다며 무역 등 새 관계 설정을 위한 본협상 개시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15일(현지시간)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화의 상임의장은 “EU 지도자들이 브렉시트 협상의 두 번째 단계를 진행하는 데 동의했다”며 메이 총리에게 축하 멘션을 보냈다. 이미 14일 밤 일찍이 브뤼셀을 떠나 런던으로 돌아온 메이 총리 또한 트위터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투스크 상임의장에게 감사를 표하며 “오늘은 순탄하고 질서 있는 브렉시트와 (포스트 브렉시트 시대) 영국과 유럽 간의 특별한 미래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길로 중대한 한 걸음을 딛었다”고 화답했다.
지난 8일 메이 총리와 융커 위원장이 해를 넘기기 전 예비협상안을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당초 이 주 예정된 2단계 협상으로의 진입전망은 무척 밝았다. 사실상 이날 행사는 직전주의 합의를 축하하는 기념행사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기념행사 직전 13일 영국 하원의회에서 노동당은 물론 보수당 반란표까지 나온 가운데 의회가 EU 탈퇴 협상 관련 최종 승인 권한을 확보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메이 내각은 브렉시트 협상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잃은 셈이 됐고, 유럽측에서도 메이 총리의 영국 내 정치 장악력에 대한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14일 저녁 만찬장에서 EU 27개국 정상의 예상치 못한 박수 갈채를 받으며 2단계 협상 진입이 가능함을 예감했다. 유럽정치전문지 폴리티코유럽이 인용한 한 EU 관료에 따르면 이날 박수에는 “약간의 안도, 혹은 ‘잘했다’는 칭찬의 의미가 숨어 있었다”. 이날 EU 수장들은 상처 입은 메이 총리를 보듬겠다는 듯 일제히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메이 총리가 “좋은 제안”을 내놨다고 말했고 융커 위원장은 “그(메이)는 우리의 동료이며 여전히 회원국 수장”이라고 말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메이 총리가 내치에서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에 “그를 저평가해선 안 된다. 만만찮은 정치인이다”라고 응답했다.
메이 총리가 연초 ‘하드(강경) 브렉시트’를 내세우고 융커 위원장과 격한 설전까지 벌였던 때와는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됐다. 런던의 지도자가 아이러니하게도 런던에서 입은 상처를 브뤼셀에서 치유한 셈이다.
다만 영국 야권과 업계는 비판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소식을 환영한다면서도 “벌써 몇 달 전에 이뤄졌어야 할 일이다. 현 정부의 혼란스런 협상 전략이 불확실성과 경제 손실로 이어졌다”라며 “당보다 국가를 앞세우고 EU와의 관계, 일자리와 경제에 집중하라”고 당부했다. 영국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연맹 등 5개 경제인 단체는 공동성명에서 “브렉시트 전 과도기 협상이 가능한 한 빨리 이뤄져 양측의 기업들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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